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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난 두 주 동안 잘 지냈어? 날이 이제 제법 서늘해서, 나는 가디건과 자켓을 꺼내 입고 있어. 조금만 더 지나면 코트를 입어도 되지 않을까, 혼자 두근두근 기다리는 중이야. 추운 건 싫은데 서늘한 건 좋거든. 그 차갑고 맑은 공기가 좋아. 뭘 하든 조금 더 가뿐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봐.
나는 지난주에 대화하다가, 너는 쉬운 선택을 하는 것 같단 이야기를 들었어. 새로운 말이라 한 주 동안 그걸 가지고 계속 생각했고, 너희랑도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쓰는 중이야. 처음에는 어라? 했거든? 근데 그럴 수 있겠더라. 왜냐하면 사람은 서로를 오독할 권리가 있고, 설명할 의무가 없으니까. 나와 대화한 D(참고로 나는 앞으로 모두를 D라고 부를 예정이야. 이런 식으로 화두를 던져준 경우에 말이지)는 내가 보여준 몇몇 면모들만 봤고, 나도 대략적인 인생 서사를 들려주긴 했지만 굉장히 압축한 내용이었으니까 사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하긴 힘들지. 문장이 길어지면 어떤 느낌인지 이해가 잘 안 갈 것 같아서, 그때 대화를 간략하게 구성해 볼게.
"너는 이런 말 하기 조심스럽지만, 좀 쉬운 선택을 하는 것 같아."
"어떤 면이 그런 것 같았어?"
"내가 관찰했을 때 (너는) 보면 누가 말했을 때 더 곱씹고, 왜 그런지 이유를 살펴보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듣는 것 같거든."
"오. 그럴 수 있겠다. 근데 내가 그러는 경우는 소수야. 이미 필터링을 거치고 거쳐서 들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듣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듣는 거지."
"만약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 너한테 상처를 주면?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대응해?"
이 말에 내가 어물쩍, 명확히 대답하지 않아서 기억이 잘 안 나. 그런 경우는 일단 없었고, 그런 정도는 이미 왜 그렇게 말했는지 맥락을 알아서 크게 상처받거나 화나지 않는다고 한 것 같은데…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네. 아무튼 왜 그런가, 해보니까 대답이 나오더라고. 차근차근 말해볼게. 사족이지만 이런 관점 얘기는 재밌고 좋아. 스스로 외면하던 걸 알게 해주잖아. 고통이 고통인 건 직면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고통이 치유되려면 처음 시도할 일은 직면이니까.
왜 화를 내지 않고, 상처받아도 덜 받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건 내가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선 안에 들인 사람에게 나름 사적인 얘기를 할 땐, 늘 마음에 전제로 깔아둔 게 있어. 이 이야기는 언제든 남의 귀에 들어갈 수 있겠다. 비밀이라고 말했지만 비밀이 아닐 수 있겠다. 그거 각오하고 말하는 거야. 말하기로 선택한 책임을 진다고 해야 하나, 방관한다고 해야 하나…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 수도 있고, 비밀의 범위가 나와 다를 수도 있고, 그냥 그 정돈 비밀 축에 못 낀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각오하는 거지. 그럼으로써 되돌아오는 어떤 영향은 내 몫인 거야. 내가 이 사람을 선택했고, 말하기로 했으니까. 그 모든 기저에는 말 안 할 거라는 확고한 믿음도 기대도 없으니까, 책임을 안고 가는 거지.
저 사람이 나를 오독할 권리에 대해서.
더불어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해명할 의무도 없는 거지, 나한테는. 이 마음이 확대되니까, 말을 할 때 굳이 A부터 Z까지 말하지 않고 결론만 말하는 경우도 생기는 거야.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을 한 연유는 뭐고, 그런 걸 할 필요가 없는 거지. 그리고 그 할 필요 없고 기대하지 않는 마음은 효율성에서 비롯돼.
구구절절 말하는 건 에너지와 시간이 들잖아. 나는 그만큼 쓸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거야. 상황과 분위기를 보면서, 해야 하면 하지만, 아닐 경우엔 생략하는 거지. 필요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여러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부닥쳐도 말한 적이 별로 없어. 다 끝나고 짧게 말하거나 말 안 하거나 했지. 기나긴 기승전결 말하기도 귀찮고, 말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을 왜 말하나 싶고, 내 아픔과 힘듦을 누구한테 괜히 짐으로 얹어주기 싫었으니까. 나도 감당 안 되는데 그걸 왜 말해, 말해서 뭐에 쓸 건데? 같은 굉장히 효율로 따지면 안 되는 일을 효율로 재고 있던 거야. 그럼 왜 자꾸 수많은 주제에 대해, 효율로 따지면 안 될 일을 자꾸 효율성을 생각하고 있냐, 하면 가난했기 때문이더라.
어중간하게 가난한 건 참 어디다 터놓기도 힘들어. 삼시세끼 못 먹는 건 아닌데 좋은 것보단 가성비를 따져야 하고, 공부할 순 있는데 어지간히 하는 게 아니라면 대학교를 갈 이유가 사라지지. 나는 어릴 때부터 어중간한 가난을 증명해야 했어. 급식비나 학비를 지원받는 등의 것들에, 제가, 우리 집이 괜찮아 보이지만 실은 이만큼 가난하니까 도와달라고. 허리띠를 졸라맬 구석이 보이는 모든 곳에 얘기해야 했지. 엄마가 그런 걸 신청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받을 수 있는데 왜 안 받아? 했고 나는 그렇죠, 부끄러운 게 아니죠…했는데 부끄러웠던 것 같아. 그깟 급식비 그냥 좀 내면 안 되나? 남들처럼 평범하게 하면 안 되나? 하고.
그렇게 증명해야만 받을 수 있는 시절을 보내다 보니까, 효율과 합리를 따지는 사람이 되더라. 내가 가진 최소한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나은 걸 택해야 했고, 그렇게 따진 선택지 때문에 느끼는 서글픔과 억울함을 달래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효율과 합리는 생각지도 못한 면에까지 적용되는 거야.
공짜는 없고, 영원한 것도 없다. 받으면 줘야 해. 최소한 동등하게 주거나 조금 모자랄 수 있어도 넙죽 받아먹을 순 없어.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 그냥, 일 리 없고 뭔가 있으니까 그런 걸 거야. 내가 그걸 꾸준히 해내거나 하고 있지 않으면 떠나겠구나. 해내야 해, 해야만 해……
환경이 참 무섭지, 특히 어릴 때 가정환경은. 나도 미처 몰랐던 걸 체득하다 못해 체화하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내가 죽기 전 삶은 참 비참하겠지, 전제하고 살고 있던 걸 깨달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래. 무언가를 설명하고 해설하는 과정, 왜 그 모든 게 귀찮고 굳이 할 필요 있나 했던 게 실은 뼛속부터 가난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었구나. 형편이 제법 나아진 지금도, 어릴 때 기억과 경험이 계속 남아있어서 이렇구나.
그다음에 이제 뭐 어떡할 거지?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이걸 깨닫고 난 직후는 슬펐고, 다음은 생각 안 했어. 나는 그렇구나, 받아들이고 책장을 덮어버릴 수도 있고 이제 달라져야지, 결심하고 바꾸려 애쓸 수도 있겠지. 아마 후자일 거야. 기대하지 않았을 때 받은 사랑의 기억도 있고, 기대했을 때 몇 배로 큰 사랑을 받은 기억도 있으니까. 유년의 가난이 지금까지도 내게 영향을 끼쳤지만, 그것도 영원하지 않을테니까. 당연하지. 영원한 건 절대 없어. 하나님을 제외하곤 고통도 슬픔도, 비참했던 시절도 서글펐던 과거도 다 사라지기 마련이야.
사랑한다는 건 무시하고 외면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알아가는 거야. 때론 그게 뾰족한 가시처럼 느껴져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거고. 감춰뒀던 이면이 들춰지는 건 누구에게나 당황스러운 일이잖아. 그렇지만 그게 또 사랑의 일종일 수 있으니까. 알아가려는 노력, 알기 위한 용기는.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얘기했고, 그 D에게도 얘기할 거야. 사실 나는 이랬어. 네가 본 나는 사실 이런 연유가 있었어. 나조차 몰랐던 게 있었어, 하고. 이건 또 나의 지극히 작은 전환점이 되겠지. 흔적을 남기고 간 물살에게 보내는 답례가 되기도 할 거고.
혹여 누군가 너에게 그렇게, 당혹스러운 말을 꺼낸다면, 왜, 를 생각해 봐도 좋아. 그 사람은 너를 더 알고 싶어서, 알아가고 싶어서, 알기 위해 꺼낸 말일 수 있으니까. 우리는 서로 알아갈 때 더 많이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자, 또 새로운 월요일이지? 맑고 청량한 시작의 시간이길 바라며. 다음 편지는 여행기를 길게 연재해 보려고 해. 호흡이 아주 길겠지만, 또 우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갈 거고, 내 일기는 언제나 남아있을 테니까 괜찮을 거야. 또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고 평안하길 바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