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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걔를 생각할 때마다, 불티를 떠올릴 때마다 찜찜하고 화가 나는 것도 일종의 트라우마일까? 시간이 상당히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그 애가 보이고 들릴 만한 모든 창구를 차단했음에도 틈새 사이로 보일 때마다 입이 잔뜩 썼다. 떨떠름해지고, 시니컬해진다. 희가 '(불티도) 이 세계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이제 알 거야'라고 해줬지만 볼 때마다 '와, 대단하다! 너 진짜 그러고 한 점 부끄러움도 없어? 정말로? 그게 네 최선이야?'라는 비꼼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불편함, 가증스러움, 그밖에 여러 내게도 독이 될 느낌을 알고 있지만 치료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총회 전 불티를 한 번 더 봤다. 5월인가, 6월인가, 반팔을 입고 있던 걸 보면 여름이 시작되는 늦봄이었을 수도 있겠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못해 갈등 하나 생기면 잠도 못 잘 정도로 두려움 많은 나에게 '이미 내게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얼마나 기도하고 자기최면을 걸고 나갔는지 모른다(사실 그건 기도가 아니라 주문 같긴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진 않고, 그 애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불퉁한 얼굴, 퉁명스럽고 딱딱한 태도와 눈짓과 목소리로 말했다는 장면만 남아있다. 그때 단풍이 열심히 도시와 문화 선교에 관해 이야기하며 '센터 처치' 강의도 하던 때인데, 그걸 가지고 열변을 토하는 걸 열심히 듣던 나도 구석탱이에 남아있다. 추천하는 책을 일일이 알라딘 장바구니에 집어넣으며, 그렇구나, 그래, 그런 거구나, 진심 반 사회성 반으로 열렬히 고개 끄덕이던 모습도.
또 다른 초여름에는 파도와 물살을 만났다. 모두 총회 전 얘기다. 파도의 직장 근처 광화문에서 밥을 먹고, 물살까지 같이 만나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당시 공동체가 어떤지, 교역자가 어떤지, 교회가, 이런 얘기가 주였다. 사실 나는 파도를 내심 좋아했다. 파도가 보여주는 당당함이 멋졌고, 모두를 어우르는 부드럽고 강한 힘에 매력을 느꼈다. 회장이 되기 한참 전에, 파도와 만나 사역 얘기를 하다 건네준 말도 아직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그에게 느끼는 긍정과 선호는 제법 깊고 높았다.
그런 만남과 대화가, 총회 때 조금이나마 부드럽고 온순한 만남으로 서로에게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게 분명했다. 우리가 조금 사적으로 친해졌으니까, 조금은 덜 사납게, 날카롭게 말하고 나눌 수 있지 않겠냐고, 은근히. 그리고 그건 내 착각이었다. 불쑥 손 든 불티를 보며 알았다.
그건 나한테나 의미 있고 기대한 바였다고.
"지금 출석 인원이 모자란 것 같은데 이렇게 바로 목차로 넘어가면 안 되지 않나요?"
무어라 할 새도 없이 불티가 장황하게 말을 이어갔다. 출석률과 현재 인원이 안 맞는 것, 어쩌고저쩌고, 하여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빠르게 했고, 압박 질문 받은 면접 응시자처럼 엉터리로 말하는 날 보다 못한 단풍이 나서서 마이크를 잡은 후에야 일단락됐다. (후에 이 건 때문에 또 한소리-뒷담인지 앞담인지-들었는데, 청년이 주체적으로 할 일에 교역자가 나섰기 때문이었다. 뭔 소리냐고 하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본론은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시작부터 걸고넘어지는 행동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조화의 아름다움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처음부터 개판이 될 거라 예상하지도 못했다. 개판이니까 따라서 개가 될걸, 이왕 어긋난 첫 단추 아주 뜯어버릴 작정으로 뻔뻔하게 나댈걸, 하는 생각은 이후 일 년 넘게 지독하게도 집요하게 머릿속을 헤집었으나 이것도 나중 일이다.
사역 보고까지 간신히 보낸 후, 회계 보고 차례였다. 여기서도 문제였다. 모든 게 문제였지만 이게 정말 문제였다. 초록과 가끔 이때 얘기를 하는데, 청중 태도도 잘못됐지만 회계로서 일 태만하게 했던 윤슬 잘못이 크다-는 평으로 결론지어지곤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내 잘못이자 책임이기도 했다.
살피지 않은 죄, 잘못.
몰라서 적당히 넘어가고만 회피에 대한 응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