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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런 말을, 셀할 때 했다.
"글쎄…뭐가 엄청 재밌지도 기쁘지도 않아. 다 느껴. 좋고 행복하다, 재밌고 즐겁다, 그런 거. 근데 특별히 기쁘거나 슬픈 적이 최근엔 없어. 그냥 살아가는 것 같아."
올해엔 몇 번,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단짝이 있어?
"가까운 사람이 있냐고? 진짜 친한 사람? 아니. 예전엔 있었는데 이제 없어. 네가 말하는 게 막 학창 시절 때처럼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고 털어놓는 사이라면, 그런 사이는 딱히 없지. 그냥 두루두루 잘 지내게 돼. 적당히."
두 가지 질문을 연속해서 받은 게 아닌데도, 최근까지 두 가지를 자주 엮어 떠올렸다. 그건 아마 내가 파리를 여행할 때 받은 느낌과 매우 가깝게 와닿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23년도까진 안 그랬다. 생애 처음 가본 나라의 새롭고 다채로운 문화와 환경에 둘러싸여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빛났다. 그때 느낀 감각과 경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진이나 영상을 안 봐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냥, 2024년도에 간 파리가 유달리 그랬다.
밋밋하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센 강을 볼 때, 대형마트에 들어섰을 때, 에펠탑을 볼 때 그랬다. 전혀 다른 경치가 좋은데 좋지 않았다. 기꺼운데 달갑지 않았다. 정확하지도 뾰족하지도 않은 감상만 자꾸 쌓여갔다. 물론 여러 자잘한 해프닝 때문에 질린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래도 희한했다. 우이천 산책만 해도 경이로움에 젖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한강보단 못해도 시내보단 큰 강을 보며 생각하는 건 왜 가소로움인지.
언젠가 트위터에서 읽은 일화가 기억났다. 젊어서 여행 가야 한다고. 나이가 들고 나서 가면, 이제 심장이 떨리는 게 아니라 다리가 떨려서 갈 수 없다고. 그땐 웃고 넘겼지만 그 말은 건강 약화에 대한 자학 개그일 뿐 아니라 어른이라는 건 그렇게 무뎌져 버림을 전제한 말이었다.
프랑스에서, 같이 장을 보고 우산을 쓴 채 숙소로 걸어갈 때였다.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불쑥 털어놨다. 이제 이런 걸 봐도 별로 감흥이 안 들어. 그냥 강이구나, 건물이구나, 하게 돼. 어릴 때 보면 너무 감격해서 하루 종일 흥분했을 텐데. 혈육도 그렇다 했다. 이제는 봐도 엄청나단 생각은 잘 안 난다고. 멋있지만, 그게 다라고.
어른이 된다는 건 나쁘지 않다. 중학교 때부터 생각해 보면, 청소년 시절은 물론이고 성년이 된 후로부터 거진 열다섯 해를 오락가락한 채 살았으니까. 감정 기복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변덕스럽게 곡선을 그리는데, 그걸 어디 티 내거나 표현할 곳은 없어서 자주 바깥을 떠돌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게 우리 집은 심각하게 늦는 게 아니면 크게 터치하지 않았고, 착하게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이 심했던 때이므로 나도 까무룩 밤이 오기 전에 늘 들어가곤 했다.
고등학생 땐 그래서 독서실이 좋았다. 공부도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어차피 SKY갈 게 아니라면, 그럴 정도로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면 전문대 가서 기술 배워 빨리 돈 버는 게 낫다, 가 집안 기조였다. 우리 중 4년제 대학을 나온 건 아빠밖에 없었지만 그저 그런 대학교는 생계를 보장해 주지 못했으므로,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래서 그 한 칸, 양팔도 제대로 못 뻗는 한 움큼의 책상과 책장이 마음에 쏙 들었고, 12시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공부하겠거니, 어련히 무심히 넘겨버리는 묵인이 좋았다. 그러고 나면 새벽 두 시까지, 여섯 시면 일어나야 하는데도 오롯이 나만 가질 수 있는 두 시간의 새벽이 좋아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고 게임을 했다. 글을 쓰면 해소되는 기분이 약간이나마 들었고, 게임을 하면 생각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청소년이라면 으레 갖는 각종 불안과 고민을.
그런 시간이었다, 15년이. 솔직히 여전히 생각도 많고 쓸데없는 형이상학적 고민이나 개념 따위를 많이 생각하지만, 그것들에게 휩쓸리진 않는다. 이렇지 않을까 저렇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오늘의 할 일과 내일의 해야 할 일을 떠올리다 보면 금세 사그라져버린다. 요 몇 년을 계속 그랬다. 그리고 말한 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거 근데 가벼운 우울증 아니야?"
내 말에 대해 되돌아온 답이 이런 게 아니었다면 어른은 으레 이렇다고,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무심해지는구나, 아니면 멘탈이 많이 단단해지고 있구나, 했을 텐데…조금 놀랐다. 황당한 대답에 그럼 너는 그렇게까지 확고하고 뚜렷하게 좋아하는 게 있냐고 물어보질 못했다. 대답했을지도 모르지만 기억은 또 안 난다. 그때부터, 23년도 프랑스 여행 때부터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대화 탓에, 늙어간다는 건 뭘까, 종종 고민하게 됐을 뿐이다.
그건 그렇게 두 번째 질문과도 연결된다. 크게 모나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는 것과. 갈등을 피하고 싶어 적당히 말하고, 애정을 표하고, 예의를 갖춘다. 피곤하니까. 관계 때문에 눈물 콧물 다 빼던 일도 손에 꼽지만, 그 꼽았던 일에서 겪은 고통과 피곤함은 별로 더 겪고 싶지 않다. 아니다 싶으면 손절한다. 찬란할 정도로 짙은 환대와 애정을 받은 적도 많았지만, 전혀 다른 꼴이 뒤섞여 어우러질 때 나타나는 시너지가 얼마나 환상적인지 알지만, 한 때의 축제와 이벤트로 치부하는 거다. 이유는 꼬리를 무는 순환으로 돌아간다: 피곤하니까. 계속 그렇게 살기가.
물론 두 번째 질문을 받아서 답할 때, 내가 뒤통수 얻어맞은 감각으로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대략 인용해 말하긴 했다. 저번 편지에서도 한 번 인용한 적 있는 "하나님은 재즈처럼" 중 '사랑: 남들을 정말 사랑하는 법'에 나온 단락이다.
스펜서 씨는 은유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여겨지는 또 다른 영역에 대해 우리에게 물었다. 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떤 은유를 사용하나? (…) 사람을 가치 있게 여긴다고 말했다. 사람에게 투자한다고 누군가 덧붙였다. 관계가 파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소중하다고 말했다. (…) 나는 사랑을 돈처럼 사용했다. 교회는 사랑을 돈처럼 사용했다. 사랑을 무지 삼아 우리는 내게 동조하지 않는 자들한테는 인정을 거두었고 내게 동조하는 자들에게는 아낌없이 자원을 공급했다. (252-253p)
그러니까 이러면 안 된다고, 서로 연약한 점을 수용하며 받아들이고 살자고, 선생님도 아닌데 나도 못 하고 있는 교훈 아닌 교훈을 꼬리에 매달고 끝맺었다.
사실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치명적일 정도로 솔직해질 때 의미 있는 게 뭔지 아는데, 그 '두루두루 사귐'의 선을 스스로 못 넘어 못 말했다. 어른이라는 건 정말 그런 것 같다; 말초신경을 잘라낸 채 사는 것. 예민함, 솔직함, 진실함, 투명함, 어리숙함 따위를 털어놓지 않고 아주 고고한 새처럼 매끄럽고 미끈한 얼굴만 내보이는.
그렇게 해야 100세 넘어 15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야 자살할 순 없으니 버티고 견디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늘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럭저럭 살아가게 된다. 무엇이 크게 고갈된 게 아닌데, 이제는 그 그럭저럭 나름의 궤도에 올라탄 생활 반경 덕분에 시간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어른인 것 같다. 한 걸음씩 물 아래로 들어가는 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