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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아웃리치의 마지막 날은 어땠느냐. 모든 오래된 기억이 그렇듯 뭉뚱그려진 채 말려들어 간 상태라 펼쳐봤자 깨끗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편지를 읽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나한테) 강렬했던 기억, 잊기엔 너무 즐겁거나 괴로웠던 기억들만 듬성듬성 남았고, 그것들만 주워서 해독할 뿐이다.
묵정밭에서 환등한 나의 유일한 셋째 날 기억은 다음과 같다: '믿음의 실험실'이라 불렸던 단독 주택에 레드와 둘이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던 시간. 물론 사실이 아닐 것이다. 기억하지 않아도 예상할 수 있는 흐름대로라면, 우리는 아침을 먹고 카페 혹은 교회에서 잠깐 모여 소감과 후희를 나누고 헤어졌을 것이다. 나와 테디, 아니면 이더와 판판까지 교역자들과 모여 앉아 이후 일정-총회에 관한-을 논의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지막 날은 그렇게 조작된, 희미한 기억의 시간이다.
레드와 나는 긴 여름 해가 저물 때까지 실험실 안에 들어앉아 맥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PPT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레드가 미리 만들어 둔 템플릿을 보면서, 안에 넣어야 할 내용을 말해주고, 의견을 나누고, 이건 아니고 저건 괜찮고 따위를 얘기한다. 이런 흐름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이러면 사람들이 조금 더 생각해 볼 수 있겠지, 괜찮겠다, 좋아, 서로를 격려하고 북돋아 주면서. 내가 봤을 때, 아니, 우리가 봤을 때 그 프레젠테이션 문서는 굉장히 멋졌다. 가독성과 내용 모두 좋았다. 우리가 어떤 일정으로 다녀왔고, 어떤 만남과 현장을 겪었는지, 그래서 그곳이 어땠는지, 우리는 어떤 걸 느꼈는지 등 2박 3일의 꽉 찬 일정이 한 문서에 다 들어가 있었다.
이제 이거면 돼. 내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레드도 동의했다. 시간이 촉박한 것치곤 잘 만든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호기심과 설렘이 있었다. 어떤 생각과 의견을 말해줄까, 아니, 뭐라고 말-피드백을 줄까? 임원단 의견도 나쁘지 않았다. 네가 괜찮다면, 정도고 이제 잘 외워서 말하기만 하면 돼, 같은 조언 아닌 조언이 다였다. 7월까지는 정말로 순진했다. 여러 번 시달렸고 바라지도 않던 충고를 듣고 이해 가지 않는 면박을 먹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좋았고 그들이 보여줄 어떤 기대와 긍정의 표현이 궁금했다.
그래서 투명하게 보였던 걸까? 내 순진함, 나이브함, 멍청할 정도의 마음과 생각이. 6년이 지났는데도 '나이브하다'는 말이 여즉 또렷하게 떠오르는 걸 보면 언제쯤 이 단어와 문장이, 언어가 그만 떠오를까 싶다. 그러나 그건 아주 결정적이거나 극적이지도 않았던 일화다.
지난 세월 동안 누가 회장은 어땠냐 물어보면 매번 까끄름하게 만드는 구석, 굴러온 돌 같은 사건과 시공간이 바로 이때다. 모든 면이 전혀 매끄럽지 않았고 처음부터 거친 데다 울퉁불퉁했지만, 그때만큼 버려졌다는 감각, 외면당했다는 충격을 사납게 전해준 날은 드물었다. 덕분에 질문에 대한 답은 늘 명토하지 않고 두루뭉술했다. 우스개 소리하듯 청문회였지, 정도로 넘겨버리거나 나 대신 남이, 그때 있던 사람이 대신 말을 덧붙여주곤 했다. 그걸 제대로 설명할 정도의 말재주와 기억력이, 적확히 말하면 외면하지 않고 직면할 용기가 없었다.
사실 아직도 없다. 이제 그 냄새 나는 오물 보따리를 풀어야 하는데도 쓸데없이 기나긴 수사와 감정 설명으로 텍스트를 채우고 있다. 변명하자면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고, 아스라해도 썩 떠올리기 싫은 대화와 얼굴을 하나씩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써야 한다.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 이 진지한 물음에 굳세고도 단순하게 '나는 쓰지 않을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할 수가 있다면(…)"1 말처럼 쓰지 않으면 털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지를 털어낸 채 자유하게 갈 수 없어서, 없다고 느껴서, 써야 했다. 친구는 내게 차라리 상담을 받으라 권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겐 누군가의 위로와 들어줌, 분명히 보이는 타인의 포용이 아니라 이기적일 정도로 내 감정과 생각을 마구잡이로 쏟아낼 창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쓴다. Attente2는 이제 끝이다.
1 "젊은 릴케는 스승이 아닌 동료였다", 진은영, 한국일보
2 기다림과 주목 모두를 의미하는 단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