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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은 열정적으로, 성토하듯, 어떻게 보면 사업 설명회처럼 느껴질 정도로 진지하게 흥분해서 설교 아닌 설교를 부르짖었다. 공간 빌려놓고 마이크 잡은 채 강연하듯 했다면 도리어 신뢰가 안 갔겠지만, 그들이 지어둔 공간 안에서 듣자니 그가 설명하고 말하는 모든 게 진실하고 효과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홍대에 갔을 때보다 더 그럴듯하게 들렸다. 비슷하게 모일 곳도 인프라도 별 없는 동네여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오늘도 늘늘이 그 동네엔 놀 게 뭐 있어요, 물어봤는데 할 말이 없었다. 6년이나 지났는데도 변한 게 크게 없을 정도로 애매하게 정지된 곳이라 그러겠지. 꾸준히 카페나 식당이 들어오고 건물이 종종 세워지지만 오래도록 붙잡아 둘 수 없는 곳. 애써 노력해야 매력을 찾을 수 있는. 동질감은 거리를 좁힌다. 우리와 그들 사이엔 이 잠깐의 접점이 전부고 이마저도 순식간에 끊길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공간 속 우리는, 적어도 나는 부러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사실 제법 '대형 교회' 측에 속하는 주제에 뭔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다 못해 부러움까지 느끼냐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대형 교회-라는 거대한 그룹 안에 속했다는 자각이 별로 없다. 비약이지만 누리고 있기 때문에 모르는 걸 수도 있겠다. 상가에서 세를 내며 전전긍긍하는 교회들, 투잡 뛰어가며 생계유지하는 교회들, 이름은커녕 존재마저 소리 소문 없이 묻혀 사라진 교회들을 나는 모르기 때문에, 속한 곳에서 넉넉하게 부어진 예산과 자유를 받아먹으면서도 자각도 성찰도 없이 불평 아닌 불평과 부유浮遊로 지내고 있던 것이다. 서울에 있으면서도 여기도 이래서 불편해, 하는 해맑은 서울 사람처럼.
그리하여 그들이 부러웠고, 벤치마킹하기 좋아 보였다. 당시에 극소수의 의견이긴 했으나 청년부 독립에 대해서도 말이 새어 나왔기 때문에, 그런 의견들에도 어떤 가능성의 길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돌아가는 길엔 희와 사진을 찍었다. 순진한 이상과 낙관에 가슴이 부풀어 그에게 종알거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사진 찍어주겠다며, 활짝 웃고 있는 우리를 찍어줬다. 핸드폰이 망가지기 전까지 이 시리즈를 연재하며 자주 들여다봤는데, 이젠 머릿속에 남은 기억만 떠올려서 그려야 하는 게 아쉽다. 그날 그때 우리가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이틀째 일정도 마쳤겠다, 예닮원이라고 교회가 소유하고 있던 수련관(?)으로 향했다. 가서 고기 구워 먹고 회의할 때까진 참 좋았다. 회의는 이제 이 각자 다른 양상을 어떻게 우리 교회-공동체에 적용할 건지, 각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사람들은 감사하게도 또 열띤 마음으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주고받았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회의록을 분실했기 때문에(분실이 아니라 지웠던 게 분명하다. 습관인데,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거나 질리면 그간 쌓아온 것들을 다 삭제시켜 버린다. 거기서 몇 가지, 폐허 속 잔해 같은 기록만 간직하고 있을 뿐)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이 뒤에 각자 숙소로 흩어져 잠들기 전까지 에피소드만, 바라지 않는데도 강렬하고 생생하게 떠오르고, 다시는 한여름 예닮원에 가지 않겠다 결심했던 기억만 있다.
수련원들이 다 그럴 텐데 어지간하면 산속에 붙어있다. 예닮원도 당연히 그랬다. 원래 이곳은 겨울 수련회 때만 애용하는 장소지 다른 계절엔 놀러 간 적도 드물었다. 숙박비도 저렴하겠다, 다 같이 모여서 늦게까지 예배드리고 회의할 장소가 없기도 해서 고른 건데…벌레가 그렇게 많을 줄 몰랐다. 있어봤자 모기(물론 산모기가 극악하다는 건 알지만) 정도라 생각했으나 자연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름과 씻고 오니 방은 한바탕 난리가 난 채로, 다들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아 있거나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무슨 일 있었냐 하니까 아주 큰일이 있었다고 했다. 곱등이가 씻으러 욕실로 들어간 레드의 치마 안쪽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걸 직접 보고 만 레드가 비명을 지르고, 미친 듯 치마를 흔들었는데 더 안으로 들어가고, 겨우 떨어지긴 했는데 방 안에 떨어져서 모두가 괴성을 지르고, 람람이 용감하게도 나서서 잡아 문 밖으로 던져버렸다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고 괜히 방안을 훑어보게 만드는 일화였다. 과연 큰일이 맞았다. 잠들기 직전까지도 혹시 우리가 미처 발견 못한 그것이 기어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주차장 바닥에, 차 위에, 공중 화장실 등 곳곳에 곱등이가 눌러 붙어있는 걸 보면서도 방 안에 들어올 건 예상하지 못하다니. 모기나 나방도 아니고 곱등이가 웬 말이냐. 바퀴벌레 하나에도 기겁해 새벽녘 집을 떠나 본가로 들어가 잤던 인간으로서 그때 사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여름 산속 수련원에 가지 않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줬다. 충분히.
지금 돌이키니 참 리듬감 있는, 운율 있는 아웃리치였다 싶다. 진지하고 심각해질라치면 바로 가볍게 떠오르게 만드는 일화들이 곳곳에 존재했고, 너무 피서객처럼 유람하지 않게 사람과 공간이 무게를 잡아줬다. 끔찍하게 진절머리 나는 곱등이도 무거움과 어색함을 순간 확 날려버리는 촉매가 되어줬으니 나쁘지 않다, 평가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꼭 곱등이어야 했을까 싶지만.
그렇게 이틀이 갔다. 총회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 무시하지 못할 크기와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땐 그저 여름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면서도 파르라니 청량하게 빛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