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년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됐고, 그달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 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됐다. 그다음 6월 3일 대선이 치러졌고, 이재명 후보자가 당선됐다. 나중 역사 교과서에는 이렇게 실리지 않을까. 물론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기도와 소망이 어마어마한 무게와 밀도로 압축되어 있었다.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이다. 무수한 가정을 꿰뚫고 최선의 결과를 맞이했으니까.
내 하루하루는 그렇게 거창하고 급격하게 휘몰아치지 않았다. 인터넷과 뉴스만 보면 세상이 이렇게 요란할 수 없는데, 하루들은 완만한 굴곡만 있을 뿐 급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살얼음도 겉으로 보면 평탄하고 단단하다. 물 찬 항아리가 깨지는 건 마지막 한 방울 때문이다. 살얼음은 살얼음이라서, 어느 순간 깨지다 못해 으깨지고 부서져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심해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위기와 고난은 늘 그렇게 재난처럼 찾아오니까.
그래도 얇고 가느다란 얼음판을 피할 수 있었다. 이젠 끝이야 하지 않고, 피곤하니까 그만 볼래 하지 않고, 해서 뭐하니 의미도 없는데 하지 않고, 그 모든 절망과 체념과 냉소에 빠지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건 하나님과 동지-동로자가 있어서 가능했다.
이번 레터 제목이자 인용구로 쓴 문장의 원출처는 우연히 맞닥뜨린 책이다.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라는 무지개신학교 활동 차 모인 한 연구소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발견이라 하기도 뭣했다. 책은 제자리에 고요히 놓여 있었고, 어쩌다 눈길이 간 것뿐이었다. 회의하다 쉬는 시간에 대충 훑어본 거에 불과했는데 덜컥 사버렸다. 제목도 제목이었고 부제도 부제였다: 연민하며 저항하는 사랑의 주를 찾아서.
하나님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내가 세월호부터 궁금해하던 주제였다. 개인적 문제에 있어선 하나님을 제대로 찾지 않았고(그땐 존재도 몰랐다), 머리가 굵어지고 눈이 넓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 의문이었다. 머리론 알았는데, 또 책을 읽으며 이성적으론 알았는데, 그 앎이 마음으로 내려오질 못했다. 노란 바람개비와 리본을 흔들고 매달면서도 정치적 연대를 떠올리고 행동했지 하나님-신은 떠올리지 않았고 찾지 않았다. 못했다, 가 맞을까? 둘 다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래서 어디 있는데, 했을 때 읽은 답들이 서류 정리하듯 머릿속 서랍에만 차곡차곡 쌓였었다.
주변엔 물어볼 생각도 안 났다. 최근 어떤 강의 감상문에 적었듯 올해가 되어서야 같은 공동체 내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볼 용기가 났다고 적을 정도로, 그전까지는 누가 나에게 '무엇무엇'이라 낙인찍는 게 두려웠다. 이태원 참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은 말 중 하나는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게 왜 거길 놀러 가서"였다. 기독교인에게 들은 말이었고,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동조할 수 없어 닫은 입이자 부끄러운 침묵이었다. 일반화할 수 없으나 그 말, 주제를 꺼내는 자체가 불편하고 무서워 스스로 말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찜찜한 침묵의 시간을 보내며 읽은 책은 그렇게 하나님의 계심, 천국과 낙원과 이상향에 머물지 않고 기꺼이 시간을 뚫고 비좁은 상자 속으로 내려온 하나님-신에 대해 말했다. 여성에게, 흑인 노예에게, 대량 학살 피해자에게, 수많은 억압을 받고 짓눌린 자에게. 그 사이에 끼이고 녹은 하나님-예수님-성령님에 대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비는 자기 힘으로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있는 유한한 동인자들의 창조적인 행위 안에서, 그 행위를 통해 행동하신다. (...) 그 안으로부터 힘을 주는 방식으로 역사하신다(...)하나님의 창조성이 우주적 과정 안에, 과정과 함께, 또한 과정 아래에서 활동하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스스로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힘을 부여함으로써 그렇게 하신다."
동로자들은 그 안에서, 그러니까 각자 내면에서, 단체 안에서, 무리 안에서 함께 헤쳐가고 있었다. 내 첫 시위가 친구들과 이루어졌듯 이번 겨울 시위도 그 동로자들이, 적확히 말하면 무지개신학교 친구들이 있었고 함께 하자고 말해서 이루어졌다. 혼자서도 담대히 나가는 사람들과 다르게 겁이 너무 많은 내겐 그 말과 글과 손이 아주 큰 용기였다. 그들은 당연히 화를 냈고 연대했다. 단체 카톡방에선 쉴 새 없이 정보와 담화가 오르내렸다.
그게 좋았다.
각각 다른 모양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 믿는 신앙의 정도도 깊이도 너무 다른데, 그래도, 그래, 그런데도 '하나님-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 같이 황당해하고 열불내는 게 좋았다. 다행이었고 안도도 했다. 왜 소수자들이 안전한 공간을 찾아 필사적으로 헤매는지, 이상하게도 그때 확실히 체감했다. 그래야만 나 혼자 눈 뜬 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서. 아는 정도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깨달을 수 있어서.
겨울과 초봄을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어느 날의 시간은 괴로웠고, 어떤 날의 시간은 화가 잔뜩 났지만, 그래도 견디고 버티며 지새울 수 있었다.
때때로 전혀 모를 사람들이 동지애와 유대감을 전해주기도 했다. 12월 7일은 계엄 후 국민의힘 정당이 탄핵소추안 가결 건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우르르 나간 날이었다. 그날 한 의원은 국회를 나서며 웃고 있었다. 시민들은 웃지 않았다. 분노했다. 12월 10일, 퇴근하며 지나치는 거리에서 나는 보았다. 분노한 사람들이 보낸 크고 작은 저항과 대항을. 12일엔 도로를 거닐며 퇴진하라 우렁우렁 외친 군중의 행진이, 14일엔 함께 깃발 들고 행진하며 예배한 사람들이, 그밖에 많은 사람이.
그리하여 나와 우리는 여기까지 나아올 수 있었다.
좋아하는 가사가 있다. death is the start of a new life, 라는 구절인데 죽음을 끝이라 치환한다면 이제부터 닥쳐올 순간도 동일하다 여겨도 좋을 것이다. 끝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또 다른 시작, 한 걸음 더 '연민하며 저항하는 사랑의 주를' 닮아가는 걸음을 옮길 때라고.
"세상과 함께 신음하시고, 그 진보를 기뻐하시고, 실패해도 믿음을 놓지 않으시며, 내부로부터 자비롭게 활력을 주시는 창조주 성령은 유한성과 죽음 속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시며, 구속적 사랑 속에 그들을 안으시고, 신적인 생명의 교제 속에서 상상할 수 없는 미래로 그들을 이끄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