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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재밌었다. 날이 좋았고, 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바람도 가볍고 맑았다. 꼭 여름휴가 나온 기분이었다. 휴게소에 들르고, 밥을 먹을 때까진 분명 그랬다.
그래서 참담하고, 그래서 아득했다.
여기저기, 걸 수 있는 데라면 모두 걸겠다는 듯 사방에 쨍한 노랑과 파랑, 빨강 글자가 굵게 새겨진 현수막이 나부꼈다. 어떤 건 제대로 만든 것도 아니라서, 정말 급하게 천에다 페인트를 죽죽 그어 만든, 새겼다 싶을 정도로 처절한 문장도 있었다. 집과 땅은 검었다. 불타버린 땅 위로 타서 없어진 집 잔재가, 찌꺼기가 재가 돼서 잔뜩 쌓인 채였다. 채 타지 않아 무성한 나무와 풀숲이 바로 옆에 산들바람을 맞으며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초록과 검정이라는 흔치 않은 대비가 섬뜩했다. 어떤 집은 탔고 어떤 집은 타지 않았다. 옆집이었는데도. 한순간에 어떤 가정은 집을 잃고 나앉았고, 어떤 가정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었다. 정말 이상했다. 그곳만, 그 구역만 유리된 채 꾸역꾸역 죽어가고 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서 다행이란 마음도 들었다. 직접 밟으며 걸어갔다간 도무지 걷지 못했을 거다.
마지막으로 본 곳은 눈에 띄게 정형화된 집이었다. 하얗고 좁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일정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 보였다. 자동차나 바지랑대를 통해서만 누가 살고 있구나, 추측해 볼 수 있었다.
"이건 뭐예요?"
"해비타트에서 제공해 준 임시 집인데, 사람들이 잘 안 쓰려 했어요. 부끄럽다고."
"뭐가 부끄러워요?"
"집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요. 이재민이라는 게 싫고 부끄러운 거지."
그래서 들어간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고 싶어 하고, 외지인이 오는 것도 싫어한다고 했다. 부끄러움. 생소했다. 그러나 또 어릴 때 무료 급식이나 지원금 신청을 위해 교무실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면 쉬이 공감할 수 있었다. 원치 않지만 해야 할 때 느끼는 심정과 기분. 무력감과 창피함.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되뇌어도 전혀 나아지지 않던 마음. 교회로 돌아가는 내내, 그 기묘하게 뚜렷한 대비와 인적 없이 덩그러니 서 있는 집이 떠올랐다.
우리 중 누구도 함부로 입 열지 않았는데, 생각과 느낌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감히 떠벌거릴 분위기가 아니란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무게감을 직접 겪기 위해 온 거지만 잠깐 본 현장만으로도 우리마저 재난에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아니, 당한 게 맞았다. 순식간에 무거움과 침묵만 남았으니까.
"그래도 우리가 뭘 한다면…어떤 걸 하는 게 제일 나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돈이죠. 지금 제일 필요한 건 여러분이 저 시장이나 관광지에서 돈 쓰며 지내는 겁니다. 청년부 로고 새겨진 티셔츠 단체로 입고 그렇게 돌아다니면 좋아할 거예요."
신랄하고 진솔한 말.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 말 꺼냈던 단풍도 다시 다물 수밖에 없었다. 분명 더 길고 많은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기억나는 건 저 말밖에 없다. 아웃리치 떠나기 전, 단풍은 청년부 모두에게 짧은 설교를 했다: 시혜적인 공동체가 되지 말자고. 우리가 뭘 해줄 수 있을까, 가 아니라 그들이 뭘 원할까, 듣고 오는 시간이 되자고. 그런데도 내 머리는 여전히 그 마음, 붙이자면 '교만'이라 붙일 수 있는 마음과 인식이 남아있던 것이다. 목사님의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오, 조금 불편하네? 즉시 알았다. 아, 안 지워졌구나. 지웠다고 착각만 했구나.
야밤에 진행한 회의는 대부분 나와 비슷했다. 불편함과 의문을 품은 채 하나둘 의견을 내놓았다. 몇 가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단타로 갈 수 있는 일일까? 이 지역이 선정된다면 지속적인 도움-어떤 걸-을 줄 수 있을까. 아웃리치처럼 정해진 기간이 아니라, 긴급한 곳에 긴급 구호를 할 수 있는 장기적 팀을 꾸리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웃리치의 개념이 평면적이었다. 전형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확실히 되돌아보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낌. 프론티어를 시작으로 아웃리치를 할 때 활동의, 명목상이 아니라, 연례행사가 아니라, 정말 나아가서 섬겨야 할 것 같다. 손을 내밀 때 딱 필요한 걸 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여름에만 반짝하는 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잊어버렸다고 생각할 때쯤에도 계속 기억하고 찾아가는 태도의 필요성.
그 지역엔 무엇이 필요한가? 자세하게 듣고 나눠야 한다. 본질에 대한 고찰을 많이 했다. 지난 아웃리치도 좋은 사역이었지만, 다시 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다. 거창한 겉을 꾸리는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알고 준비하는 것. 아웃리치에 대한 유연함이 정말 중요하다. 하나님이 보내실 때 가는 것, 우리의 때가 아니라.
교회가 마음적으로 채워주고 있어서, 그 자리에 복음이 들어설 틈이 생긴다. 정보의 중요성도 느꼈다. 아웃리치=돕는 것으로 생각하는 청년이 대부분일 텐데, 전달자들이 중요할 듯싶다.
6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면 현재의 나와 공동체에 물음표가 생긴다. 나눈 이야기는 과연 얼마나 적용됐을까.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이후 아웃리치가 정말 이런 방향과 의식을 갖고 됐냐 하면…글쎄. 아무튼 당시엔 그래야 한다, 하는 공통의식이 우리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무작정 도와줄게요, 하고 나서는 태도는 상대를 해치기만 할 뿐 진짜 도움이 될 수 없고, 서로가 천천히,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다가가야 한다고. 아웃리치-나가서, 닿는다는 뜻이 무엇인지 뼛속 깊숙이 새겨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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