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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회의가 끝난 후였다. 나와 단풍, 희가 남았다. 몇 명이나 모았냐고 단풍이 물었다. 해맑게,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굉장히 적은 수였던 것 같다. 임원단은 다 가냐고 재차 질문이 돌아왔다. 나 포함 네 명이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일정이 있대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답변을 덧붙여서. 단풍의 얼굴이 심각했다. 희도 마찬가지였다. 나 혼자 멀뚱멀뚱 서 있던 그때 강경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D, 이런 식이면 안 돼. 리더들 다 끌어모아야 한다."
왜요? 단풍이 구구절절, 분명하고 단호하게,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이유를 설명했다. 얼떨결에 알겠다 얘기하고 나오면서도 납득 가진 않았다. 속만 울렁거렸다. 내게 너무 힘든 과업이 떨어졌다. 낭만과 (진지하지만) 가벼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해내야 한다, 는 사명만 남아버렸다.
스물 초반, 뭣도 모르고 대부업 콜센터에 일하러 간 적 있었다. 회기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는 사무실이 속한 건물엔 각종 대부업 간판이 잔뜩 걸려 있었다. 그곳은 50분 일하고 10분 쉬는 사이클로 돌아가는데, 그 시간 동안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센터장이 강압적 핀잔을 주던, 공장 같은 곳이었다. 단풍이 열 명을 다 채워야 한다고, 채우지 않으면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단풍의 얼굴에서 센터장을, 멀리 떨어진 채 누군가에게 핀잔주던 소리만 희미하게 기억나 얼굴도 채 모르는 그 장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예배를 드리러 가야 했기 때문에 나섰던 복도로, 앤이 보였다. 눈이 마주쳐서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다. 물론 우리는 매주 얼굴을 봤기 때문에 해묵은 근황과 안녕을 나누진 않았다. 게다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하기 싫은 말, 그러나 해야 하는 말. 잔뜩 찌그러진 몸과 표정으로,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우물쭈물, 혹시 프론티어에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어보던 내가 있었다. 앤, 시간만 괜찮으면 하루나 이틀이라도 괜찮아, 나나 테디도 이스라엘 가지만 가잖아, 아마 괜찮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확신도 낙관도 없는 말을 토해내듯 해낸 애원. 예배당 들어가기 전 그 짧은 시간, 30초도 안 됐을 시간이었다. 말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솔직해지자. 싫은 소리 하고 싶지 않았다. 애원도 원하지 않았다. 비굴할 정도로 구질구질하게 같이 가자 해야 하는 순간이 짜증 났다. 나한테 화가 났다. 이런 말도 당당하게 못 해? '넌 회장이야! 대표자라고, 관리자가 아니라. 근데 왜 그렇게 중간 관리자처럼 굴어?' 감정과 느낌이, 생각이 쏟아지는 비눗방울처럼 마구잡이로 흩어졌다. 과장되고 왜곡된 말, 비난인지 비판인지 모를 말들과 함께.
"음."
제발 좋다고 해줘. 괜찮다고. 이런 숨 막히는 기다림은 원하지 않아.
"음…꼭 전일 참석은 안 해도 되죠?"
"그럼!"
영업에 성공한 세일즈맨이 된 기분이었다. 잠깐의 머뭇거림과 조심스러운 되물음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건 조금 전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숨 막히던 공기를 생각하면 백 배는 더 긍정적이고 희망찬 답변이었다.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네 시간에 맞춰서 하면 돼. 무리하지 말고. 그제야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됐다. 내가 제일 잘하는 말들로 가득한 공간이. 그저 부드럽고 몽글몽글한 단어와 문장으로만 채워진 곳으로.
예배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을 들면 단풍이 보였다. 설득해야 할 리더들이 보였다. 짜증 나는 불티도 보였다(걔 머리통을 노려보며 바트 목을 쥐고 흔드는 호머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보였다.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긁고, 옥죄여오는. 찬양과 설교는 배경음악조차 되지 못했다. 나는 앞자리, 심지어 중간 분단에 앉아 있었고 열심히 눈을 감고 입을 벙긋거렸지만 그게 다였다. 몸에 익었기 때문에, 숙련 노동자처럼 기계적으로 해낼 뿐이었다.
원래 친한 친구들에겐 애원조로 호소라도 할 수 있었다. 임원단에는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라도 있었다. 안 친한-교류는커녕 접점도 크게 없는-리더들이 문제였다. 나는 그들을 몰랐고, 그들도 나를 잘 몰랐다. 그때 셀 리더와 회장은 서로 친분 다질 시공간이 없었다. 리더들은 마을 교역자와 마을 장과 모임을 가졌고, 한 달에 한 번, 장長 모임(LM) 때나 얼굴을 봤다. 임원단은 옥천 허브이자 섬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이미 그때도, 임원단을 의지할 존재, 신뢰할 사람들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체화된 버릇, 나 혼자 다 해내야 한다는 태도와 습관이 또 충분히 도움을 요청할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가뒀다. 왜냐하면 그건 내 일이기 때문이었다. 단풍이 내게, 아주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네가) 모아와야 해, 라고 했으므로.
어찌저찌 친구들을 긁어모았지만 아직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세 자리나.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이제 더 쥐어 짜낼 힘도 용기도 없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녔다. 접점 없는 친구들에게 제대로 용기 내 질문한 적은 없었다. 한 번도.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동난 쌀독을 박박 긁는 바가지의 마음으로 람람과 부들, 나무에게 연락했다. 전화 받았으면 하는 마음 반, 안 받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공존했다. 사실 후자가 더 컸다. 부들이 받았다. 여보세요, 수줍고 어색한, 여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앤에게 하는 것보다는 덜 애원조로, 설득과 논리와 감성을 섞어 이야기했다. 그렇게 어렵지 않으며 친구들도 가기로 했으니까 너무 어색하지도 않을 거라고. 부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진 모르지만, 한참 진지하고 말없이 듣던 부들은 고민과 기도를 조금 더 해보겠단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거절 확률이 더 큰 반응이었지만 묘하게 홀가분했다.
이유는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 용기 냈어. 친하지도 않은 부들에게 전화해서 권유했다고. 부들은 람람과 나무보다 어려운-섬세한 친구기 때문에-상대라서, 가장 힘든 상대와 전화 통화를 무사히 끝냈다는 점에서 마음이 후련했다. 웃기지만 해방감도 들었다.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단풍의 숫자도 불티의 성명문도 떠오르지 않았다. 할 수 있구나, 할 수 있어, 하는 연약하지만 또렷한 용기만 마음에 고여 있었다.
동시에 용기를 냈던 순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날 무시하고 싫어하던 상대에게 직접 찾아가 같이 잘해보자 손 내밀던 일, 미안하다 편지를 쓴 일 따위가.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동시에 빠르게 흘러가 끝난 후가 되었으면 갈망하던 때가. 그때 용기는 좋은 결과로 보답받을 때도 있었고, 외면당한 적도 있었지만 결단코 그 자체가 후회되거나 실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었다. 자만이라 한들 뭐 어떤가. 자책 퍼센티지가 높은 나에겐 그런 자만으로 추를 맞춰야 했다.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람람과 나무는 고민했지만, 흔쾌히 가겠다 얘기했다. 다시 연락한 부들은 조심스럽게, 아주 조용히 승낙했다. 마침내 열한 명이 모였다. 애원과 용기로 모은 친구들이. 악조건과 바쁜 시간 속에서도 기꺼이, 공동체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겠다 결심한 동로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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