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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었고, 늦봄이었다. 그 당시에도 더웠지만 지금만큼 불덩이 같은 더위는 아니어서, 아침엔 조금 서늘하기까지 했다. 이른 아침 교회 6층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평일이기 때문에 그 다락방 같은 사무실에는 나 혼자 앉아 있었다. 일찍 일어난 덕분에 느낀 피로함과 나른함, 이후 계획 같은 게 머릿속에서 싹 씻겨 내려갔다. 너무 상쾌하고 점잖은 말이다. 적확히 말하면, 물 싸대기를 맞은 꼴이었다. 그것도 지나가는 차가 밟고 간 물웅덩이의 고인 물.
단톡방에 갑자기 등장한 장문의 성명문으로 인해 안 본 사람 숫자는 빠르게 줄어도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누가 말을 얹는단 말인가? 나밖에 없었다. 아웃리치 프론티어의 책임자이자 팀장인 나.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장문 창을 열고, 한 자 한 자 다시 읽었다. 말이 길었지만 결론은 이랬다: 왜 리더들만 가냐. 일반 청년들에 대한 차별이다. 열이 났다. 얼굴이 뜨거웠다. 가슴이 쿵쿵, 들릴 정도로 뛰었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나오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감상만 맴돌았다.
미친 건가?
워드를 급하게 켰다. 카톡의 쬐만한 화면으로는 이 분노와 빡침을 도저히 담아낼 수 없었다. 손이 덜덜 떨렸는데 키보드도 그에 맞춰 소리가 아주 요란했다. 20분인지 30분인지가 그 기막힌 성명문을 반박하기 위한 문서 작성에 쓰였다. 다행히-감사하게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허옇게 점철됐던 분노는 쓰면서 조금씩 사그라졌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쓰기는 내게 마음에 고인 독과 욕을 정화하는 수단이었다. 머리가 맑아지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냅다 전송해 '문서 배틀'을 펼치려던 각오도 슬그머니 고개를 수그렸다. 리더가 단체로 모인 채팅방이라는 점과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회장이라는 직분이 걸렸다. 결국 희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음…너무 화난 티가 많이 난다.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이래서 검증이 필요하구나. 회장 하며 깨달은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사례도 개 중 하나다. 혼자였다면 극단적으로 좁아진 시야와 정신은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누군가를 물어뜯기 위한-공격하기 위한 표현만 쏟아냈을 터다. 희의 단단하고 또렷한 목소리는 내 화난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고쳐야 할 바, 지향할 방향을 정확히 알려줬다. 그렇게 또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분노한 티가 남지 않았고 조목조목 짚으면서 우리 목적과 방향성을 정중하게 알리는' 문서가 완성됐다. 보낸 후 읽었는지 무시했는지 모르지만 불티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제야 한 시간의 맹렬했던 긴장과 에너지가 꺼졌다. 탈력감이 들었다. 더불어 뼛성이 났다. 서로 키보드 워리어라도 된 것처럼 떠들었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불티의 답변을 받고 답장을 작성하고 다시 답을 기다리는 동안 느꼈던 모든 감정과 느낌은 속이 알근하다 못해 홧홧할 지경이었다. 멱살 잡고 흔들고픈 상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피곤했다. 한 방, 잽 한 방 날리고 언제 그랬냐는 양 쌩 사라진 불티에게.
그 뒤 희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기억은 당연히 안 난다. 늦봄, 초여름에 가까운 계절, 같이 계단을 터벅터벅 내려왔으리라고, 희뿌연 기억을 갖고 추측해 본다. 만사 착착 진행이란 건 만화책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고개 하나 넘었다고 끝나지도 않는다. 그 당시 여름에는 놀랍게도 많은 행사가 겹쳐 있었다. 청소년 부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비전 트립과 대만(태국?) 비전 트립과 이스라엘 성지 순례가 엇비슷하게, 혹은 아슬아슬하게 겹치고 낀 채 리더를 포함한 청년들을 우수수 데려가 버렸다. 처음엔 별 생각도 안 들었다. 나도 이스라엘에 가고, 없으면 없는 대로 되는 리더를 모아 가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억지로-강권해서 가는 게 얼마나 진심 어린 마음일까? 정말 열정 있는 리더가 나타날 거야, 하는 낭만주의에 가까운 마음도 있었다. 문제는 그게 나만의 생각이란 거였다.
"D, 이런 식이면 안 돼. 리더들 다 끌어모아야 한다."
아, 청천벽력 그만 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