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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이 되고서야 다음 편을 쓴다. 이상하게도, 뉴욕 여행기를 쓰던 때와 다르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어딘가로 자꾸 도망치는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을 피해, 글을 써야 할 순간을 피해서, 되도록 멀리. 영은 나에게 '누가 읽지 않아도 너를 위해 쓰면 된다'고, '네 회복을 위해서 네가 좋을 대로 쓰면 된다'고 얘기해줬지만 정작 나는 그 회복과 치료가 달갑지 않았던 거다. 직면해야 하니까.
적당히, 그럭저럭 넘어갔던 많은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를 두들긴다. 친구들의 공감 덕분이다. 해와 바람의 내기에서 결국 태양이 승리한 것처럼, 다정한 한마디에 내 마음과 손을 독촉할 수 있다. 회복의 길은 원래 지난하나, 그 지난함은 결코 혼자 겪을 일은 아니라 힘껏 말해줄 수 있다. 클리셰라 붙이기도 민망할 그 말, '넌 혼자가 아니'란 그 말을, 아주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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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했던 과거를 돌이켜 본다. 여름 총회가 개판 났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인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좋았던 시기다. 사랑을 느꼈고 공동체성을 느꼈다. 목격하고 배우고 알아가고 깨달았다. 크고 작은 다양성을 띤 교회 각자가 하나님을 밝히고 있구나, 싶어서 우리도 이렇게 하면, 할 수 있다면, 하고 가슴이 부풀던 때였다. 순진하고 진지한 고민과 이상과 생각을, 아무도 비웃지 않았고 진지하게 나누던 시간이었다. 그게 너무 좋았다.
물론 그 '좋았음'은 시작한 이후다. 처음에는 골치가 아팠다. 2016년, 공동체는 3년 동안 예천으로 아웃리치를 가기로 했다. 2018년까진 문제가 없었다. 그다음 해인 19년, 내가 회장이 된 해가 문제였다. 3년이 끝난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물론 이전부터 지역 선정은 난제였다. 예전에 비해 우리 같은 비숙련자 단기 자원봉사자들이 가서 도울 만한 일이 크게 없었다. 백여 명 넘는 단체가 가서 할 만한 건 더더욱. 때문에 16-18년도엔 지역 내 작은 교회 여러 곳에 작게 찢어져 봉사를 나가기로 했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좋아했다. 찢어져도 집회할 땐 다 같이 모였고, 아니더라도 작은 그룹 안에서 싹트는 유대와 우정은 생각지 못한 기쁨이었으니까.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혹은 이미 옛날부터 아웃리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다. 때문에 동계수련회 이후, 기억이 맞다면 3월 운영회의에서 준비해야 한다, 고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당시 단풍은 '문화 선교'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자체 강의도 관련된 책-들어야 해서 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머리를 쥐어짜 구글에 검색하니 나왔다. '센터처치'였고 더 솔직하게 말하면 한 장도 안 펴봤다-을 접목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도시에서 선교하기 위해선 문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니 아웃리치도 그런 전환점을 맞이해야 한다 열변했다. 동시에 고성과 속초에 번진 큰 산불 소식을 듣고 이렇게도 말했다(그 전일 수도 있다. 아마 지역 후보지 중 속초가 있어서 이 사건 이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얘기하던 시점 같다); 우리는 주러 가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걸 주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걸 줘야 한다. 시혜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구구절절 옳고 공감했다. 좋아하는 사람 말엔 더 귀 기울이는 나로선 더 그 말이 도시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딱 맞아 보였고, 문화적으로 무언가 선한 영향을 퍼트리고 싶었던 개인 취향에도 착 달라붙는 말들이었다.
좋은 말은 으레 자연스럽게 모두에게 좋을 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 착각보단 예상을 빗나갔다. 좋기 때문에 마음과 머리가 동했으니 행동으로 옮길 원동력도 될 줄 알았다. 그냥 그게 끝이었다.
사실 사람들은 프런티어 자체에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참가 자격 요건에 제한을 붙인 게 크지 않았을까. 선발대로 가는 거니까 리더들만 가야 한다고 말한 게 너무 거칠었을까. 타이밍이 안 좋았을까? 아니면 동계 수련회부터 우리-나에 대한 기대치가 하강 곡선을 그렸던 걸까? 당연히 요인을 알 수 없는데도 그때부터 끊임없이 원인을 찾으려 애썼고 나에게로 책임을 돌렸다. 그건 편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지만 서서히 바스러지기 시작한 머리는, 마음은 그게 맞다고 여겼다. 더불어 납득하기도 쉬웠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논리적이었다.
마음과 정신을 조이고 있던 나사가 하나둘 빠지는 것과 별개로 화는 났다. 불티가 성명문에 가까운 장문의 톡을 리더 단체방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프런티어 일정 이미지를 공유한 후에. 참여해 주길 바란단 독려 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