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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마음으로 기도실에 갔느냐, 하면 슬퍼서 갔다. 억울해서, 답답해서 갔다. 여름 더위마저 끝물이 된 무렵이었다. 작은 기도실, 누군가는 소리치고 누군가는 울고 있는 소리가 먹먹하게 들리는 공간에 들어섰다. 신기하게도 그 울부짖음과 소리는 방에 들어가면 잘 들리지 않는다. 비좁은 방에 있는 거라곤 낮은 상과 헤져서 반질거리는 방석 하나뿐. 거기 그냥 무작정 엎드렸다.
엎드린 채 아무 말도 않았다. 울며불며 소리치기엔 너무 많은 말이, 생각이, 감정이 목구멍에 잔뜩 고여 나올 수 없었다. 한나처럼 웅얼거리지도 않았다. 그냥 방석에 코를 박고 숨만 쉬면서, 하나님, 하고 한 마디 내뱉기만 했다. 하나님, 하나님. 며칠을 그렇게 보냈다. 퇴근하자마자 가서, 어쩔 땐 고요하고 어쩔 땐 처절한 소음으로 가득한 기도실에 출근하듯 들어가서, 외투만 벗은 채 옹송그리고 앉아 침묵했다.
말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내 감정마저도 의심하기 때문에,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느낌이 과연 옳은가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막막한 침묵으로 보냈다. 누구에게도 걱정과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십여 분의 짤막한 시간만 기도 아닌 기도로 채웠다. 사나흘이 지나고 나서야 말다운 말을 꺼낼 수 있었는데, 희한하게 공동체에 대해 기도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괴롭고 슬픈데, 답답하고 속상한데 그들, 우리에 대해서 주님께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거창하고 멋진 내용은 아니었다. 독과 상처는 회복되지 않아서 내가 꾸역꾸역, 초라하게 꺼낸 문장은 하나밖에 없었다:
주님,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물론 이 말도 완벽히 끝맺지 못해 울면서, 떨면서 중얼거렸다. 주문처럼 읊조렸다. 나는 이 문장에 어떤 말도 더 깁거나 뺄 수 없었다. 15분에서 20분을 한 문장만 띄엄띄엄 읊은 후에야 일어났다.
한 달 동안 그런 기도만 했다.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서로를 바라보고, 포용하고, 용서할 수 있게. 문장은 한 번에 나오지 않았다. 몇 분, 혹은 며칠에 걸쳐 겨우 다른 하나가 나오고 또 다른 하나가 나오는 식이었다.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는 기도는 아주 나중이 되어서야 큰 한숨과 함께 뱉어졌다. 그건 내가 바라서, 원해서 말한 게 아니었다. 눈물과 날숨과 함께 토해졌다. 목에 걸린 돌처럼, 토하면 토할수록 더 역겨운 위액처럼 용서는 괴로움과 역겨움, 비린내를 잔뜩 품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늦여름과 초가을을 보내니 조금 사람이 덜 무서워졌다. 그전까진 교회 가기가 무서웠는데, 모든 사람이 날 싫어하는 것처럼 여겨져 눈 보기가 두려웠는데, 울며 꺼낸 기도가 나를 가볍게 만들었다. 약간.
응답이라는 게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라면, 분명하고 확실한 표현으로 뜻한다고 하면 주님은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소리 없이, 정적 속에 계셨다. 가만히. 역설적으로 나는 그 적막이라 봐도 좋을 두터운 고요 속에서 힘을 얻었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웅크림으로써 다시 공동체를 직면하고 사랑할 용기를 얻었다. 다가온 가을과 하반기와 겨울 총회를 대비할 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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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오기 전, 다사다난한 2019년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던 늦가을에 감한테 전화가 왔다. 감은 이런저런 얘기와 피드백을, 감답게 예리하게 내놨다. 그러고도 여러 말을 나누다가 막판에 감이 뜬금없이 얘기했다.
"그래도 나는 그때 가장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았어. 그때만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 적이 없었거든. 부끄럽지 않니, 하고 물어보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너도 그렇지 않아? 지금만큼 공동체를 위해 간절하고 절실히 기도할 때가 언제 있겠어. 그렇지?"
맞아요. 나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맞는 것 같아요. 지금만큼 누군가와 누군가들을 용서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고 말한 적이 없어요. 했던 기획이나 행정에 대해선 민망할 정도로 못났지만 그래도 올해만큼, 이때만큼 울면서도 끝까지 기도한 적은 없었고,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전화를 끊고 홀로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그래도 버티고 견뎌보겠다고. 내 안엔 여전히 악독과 분노가 출렁이는 항아리처럼 차 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