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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지난 이주 동안 어떻게 지냈어? 장마철이라 몸도 마음도 축축 가라앉진 않았나 몰라. 나는 또 이리저리 출렁이는 나날을 보냈어. 면접을 보고, 합격하고, 제주도에 갔다가, 마지막 카페 출근 하고, 집에 콕 틀어박혀 너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중이지. 오늘은, 그래, '순례' 키워드로 떠난 제주 아웃리치(선교 여행이라고 불러야 할까? 잘 모르겠다)를 다녀와 느낀 점을 나눠볼게.
일단…제주도는 처음부터 선택지에 없었어. 예산도 시간도 안 맞았거든. 이때까진 내가 취업했을 거란 막연한 생각도 있었고, 더 이상의 여행은 사치란 생각도 했던 거 같아. 두 달에 한 번 꼴로 비행기를 탔으면 말 다한 셈이지. 그런데 하나님의 시간이나 계획은 내가 생각한 거랑 달랐나 봐. 2주 전까지만 해도, 면접 보기 전까지 계속 이력서 넣고 있었거든. 지원하고, 수정하고, 지원하고, 보완하고, 지원하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아, 나는 내가 기다리는 걸 제법 잘한다 여겼는데 아니더라. 스트레스가 제법 심해서 샤브샤브 먹는데 고기 누린내를 맡을 정도였거든. 두 번째 편지에서도 썼지만, 그 후로도 감정이든 기분이든 오락가락하긴 해서, 반쯤 내려놓고 살아보자, 하면서도 내려놓는 게 확실히 된 건 아니었어. 억지로 손을 펴고 털어내던 거였지. 나는 생각보다 충동적이거든? 신중히 고민하다가 고민에 질려버려서 버튼을 퍽 누르는 사람인데, 이번 제주도도 엇비슷한 흐름이었어. 간단히 말하면 도피성이었지.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자꾸 자고 의욕이 없으니까, 환기라도 하고 오자, 란 마음으로.
물론, 회사 합격하고 간 제주니까 다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갈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큰 기대는 없었어. 음, 뭐라 그럴까. 아무런 마음이 없다? 하도 많이 떠났다가 돌아와서 그런지, 원체 기대 없이 살려 애쓰는 성향이라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 그치만 그래서 많은 걸 또 채우고 비워내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이 채워지고 비워지는 중, 이란 상태를 느낀 건 둘째 날이야. 아침에 사려니숲길을 걸었는데, 아무런 사진도 찍지 않고(내가 찍사였거든), 오롯이 초록만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았어. 집에서 혼자 있을 때랑 다른 느낌이었어. 중간중간 잡생각이 많이 떠오르긴 했지만, 내가 주로 느끼고 있던, 외면하고 있던 감정이 뭔지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거든. 언제나 나는 두려움을 느꼈어. 섭섭함이랑. 서운함도. 착하고 무던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 감정과 상태를 솔직히 말해봤자 외면받으리란 이유 모를 불안감, 조건 없고 끝없는 사랑이란 것에 대한 의구심…수없이 깨닫고 직면했던 감정이긴 해. 다만 착한 아이로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아직도 마음에 쐐기를 박은 채 단단히 서 있어서, 매번 다시 깨닫고 느끼는 거지. 이런 건 참 쉽게 전환이 안 돼. 예전에 비하면 많이 작아졌다 싶지만 뿌리가 뽑히긴 할까 싶어. 그건 또 가봐야 아는 일이겠지.
오후엔 바다가 보이는 둘레길을 따라 걸었어. 말이 둘레길이지, 한 서너 시간을 꼬박 걸으니까 피곤하긴 하더라. 그 와중에 사진 찍겠답시고 허리 숙이다가 핸드폰 또 침수됐잖아. 얼레벌레…핸드폰은 정상작동하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대열 꼬리에 붙어서 걸어갔거든. 내가 먼저 갈 거야! 하는 승부욕도 없고, 다른 사람 속도 맞춰 걷는 타입이다 보니까 천천히 걸어가는데, 갈림길이 있었거든? 한쪽은 산 위로 올라가는 거고, 한쪽은 그냥 크게 돌아가는 길이었어. 더워 죽겠는데 올라갈 리가 있나, 선발대 사람들이 다 같이 크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 먼저 가버렸지. 뒤따라 가는데, 식당 사장님이 갑자기 나오셔서 그러는 거야. 여기 올라가 봤자 길 없다고. 공사 중이라고. 먼저 간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말야. 좀 웃겼어. 전도사님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짧게 나눴던 기억이 나. 천천히 간 건데 예상치도 못하게 앞서게 됐네요, 같은 거. 꼭 빠를 필욘 없나 봐요, 한 것 같기도 하고(어제 점심도 기억 못 하는 사람한테 적어놓지도 않은 화요일 오후 담화를 기억하라는 건 무리야). 길의 끄트머리, 인적 드문 곳에서 예배를 드렸거든. 파도 소리가 기억나. 기타 현 뜯는 소리가, 합창 소리가 묻힐 정도로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던 파도가.
사실, 많은 게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아. 그래도 오후의 바다 예배와 밤에 리조트 로비 뒤편 소파에 둥글게 모여 앉아 얘기하던 시간, 셋째 날 밤, 귤을 까먹으며 도란도란 나눴던 시간은 기억하지. 이 시간을 통해서 삶은 파도 같고 사람을 꽤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거든. 사람을 제법 좋아한다는 건, 사진 찍으면서 막연히 느끼긴 했어. 새벽마다 사진을 매만지면서도. 밝고, 환하고, 활기차고, 진중하고, 수줍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거든. 막연한 애정을 느꼈다고 할까. 이 맑은 얼굴들이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았으면 좋겠다…어렴풋이 바랐으니까. 그래서 셋째 날 나눔 때 말했어. 나는 사람을 카테고리화해서, 여러 타입으로 나눈 다음에 거기 맞춰서 반응하는 사람인데…사람은 그렇게 찍어낸 모양이 아니었다고. 저마다 다른 꼴로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결과 겹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형화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이어 말한 게 이거야; 삶이란 게 파도 같다고. 어쩔 땐 좋고 나쁜 게 들어오고, 어쩔 땐 좋은 게 남기도하고 나쁜 게 남기도 한다는 점에서. 삶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매번 이렇구나 저렇구나 해볼 뿐이야. 그러다 이번에 제법 그럴싸한 답을 찾은 거긴 해. 내 모양이 물결이니 생애도 파도 같구나, 하고. 모든 게 다 쓸려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러면서 흐릿하고 선명한, 제각각의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선 꽤 그럴듯하다고 봐.
바다 예배 때, 전도사님이 순례에 관해 말해줬는데, 그때 걷기에 대해서도 조금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어.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나아간다' 였거든? 근데 예배 전 걸었던 여정은 늘 '나아간' 건 아니었어. 걷다가 멈췄다가, 돌아왔다가 올라갔다 내려가는 등 그냥 발길 따라 '걸어간' 거였지. 나아간 게 아니라. 삶이 파도 같다고 했잖아. 파도처럼 걷는 거 같아. 걸어간다, 나아간다, 앞만 보고 가는 게 아니라, 그냥 걷는 거야. 그 걷기엔 직선도 있겠지만, 곡선도 나선도, 잘리고 끊긴 선도 있겠지. 그러면 그때마다 또 걸으면 되는 걸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뭘 정확히 비우고 채웠는지 몰라. 그런 상태, 라고 짐작했을 뿐이지. 하지만 좋았어.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처럼, '가보니 좋았더라', 야. 이 편지가 너에게 닿을 시간에, 나도 첫 출근하려고 깨있을 텐데, 또 어떤 상태와 기분으로 준비하고 나갈지 모르겠다. 다만 "발 딛고 살아가는 모든 곳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발걸음"이고, "함께 걷던 동지들이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함께 걷고 있을 테니", "다시금 온몸으로 하나님 나라를 느끼며 사소한 것에서도 기쁨을 찾는 순례의 여정"을 걸어가야겠지.
파도를 짊어진 채, 계속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