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 2:10)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말을 걸었다. 눈을 쳐다보려 애썼다. 백여 쌍, 이백 개의 눈동자 하나하나를 보려고, 호의와 호기심과 적대와 무관심이 뒤죽박죽 섞인 시선을 마주치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혀가 어떻게 놀아나는지도 모른 채 얘기했다.
그리고 경선이 끝났다.
우리가 이겼다.
얼떨떨했다. 믿기지 않았다. 기쁜데 이상했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승리라서, 이후 남겨진 사람들, 그러니까 패배한 사람들, 불티가 어떨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불티도 아마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뽑힐 줄 알았을 테니까. 내가, 우리가 예상한 것처럼.
돌아오는 주일에, 기쁨의 곤죽 속에서 희가 나를 불렀다. 희는 먼저 축하한다고 전한 후 네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디, 많은 일이 있을 거야. 그리고 지금 즐겁고 기쁘고 정신없고 바쁘겠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어. 불티와 화해해야 해.
불티와 나는 같은 리더였다. 셀은 12월에 종강을 맞이한다. 이 말인즉슨 회장 선거가 끝난 후에도 한 달을 더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임원단 뽑을 생각과 졸업 전시회에 준비로 머리가 복잡하던 나는 그 모든 걸 싹 날려버리는 단호하고 뚜렷한 목소리에 황망했다. 안 그래도 불티는 그 후로 나와 말은커녕 얼굴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나는 무슨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겼는데도 온전히 즐거울 수 없던 이유 중 하나였다, 불티는.
"화해요?"
"그래. 그리고 네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해."
"하지만 걔는 제 얼굴도 안 보려고 하는데요."
"디, 네가 이겼어. 그 순간부터 너는 주변인이 아니라 중심인이 된 거야. 네가 먼저 손을 내밀고 이제 같이 공동체를 사랑으로 가꿔보자고 해야 본이 되는 거야(그림이 되는 거야, 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불티는 지금 상처를 많이 받았어. 네 말을 안 들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아예 손 놓고 있는 것과 시도하는 건 아주 달라."
하지만 저도 상처를 받았는데요. 화기애애하게 잘 지내다가 쌩하고 지나가면서 나 삐졌고 화났어, 하는 애한테 제가 왜요? 속이 너무 좁은 거 아니에요? 그럼 준비라도 잘하던가…할 말은 굴뚝 같고 마음은 숯처럼 새까맣게 타오르고 있었다. 억울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굳이? 기쁨으로 말랑말랑해진 마음이라도 내겐 분명한 벽과 선이 존재했다. 환대는 내게 친절한 사람과 중도에 선 사람에게만 가능했다. 나는 수동적이고 견고했다. 아닌 사람, 너무나 당연하게 적대감을 표하는 사람에게 나는 도저히 고개를 숙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알겠다고 한 건, 희는 언제나 옳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게다가 나는 좋아하는 사람의 말은 한층 귀담아듣는 태도가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의 말을 안 들을 어떤 이유도 없었다.
먼저 연락하라는 희의 조언-당부에 가까운-을 듣고 돌아서는데, 이번엔 초록이 불렀다. 초록도 축하를 먼저 전했다.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 재잘거림이 끝난 후 한층 차분한 목소리가 엄습했다.
"디. 도망치면 안 돼."
화살이었고 창이었고 주문이었다. 고백하건대 내 일 년은 이 말 하나로 시작해서 끝났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이제 그만하고 싶을 때마다, 무시하고 외면하고 숨고 싶을 때마다 초록이 한 말이 떠올랐다. 도망치지 마.
도망치지 말고, 먼저 손 내밀기. 희와 초록의 화인 같은 말을 머리와 가슴이 파일 정도로 단단하게 새긴 채 새해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