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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홀가분하게 불티와 화해하고 깨끗하게 2019년을 맞이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동화처럼 완벽한 매듭으로 결말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티에게 어정쩡한, 선뜻 손 안 가는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대답은 따로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은 답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너무 바빴다. 나는 교회에서 팀 한 번 맡아본 적 없었고, 테디는 셀 리더도 한 적 없었다. 사회에서도 우리는 말단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으로 작은 쳇바퀴를 굴리고 있을 뿐 매니지먼트란 단어는 어디 속했는지도 모를 먼 단어였다. 운영과 관리를 떠나 새 임원을 뽑는 과정부터 난관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아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개인사로 바빴다. 한밤중 카페에 앉아 구겨지고 너덜너덜해진 명부를 펼쳐둔 채 테디와 이야기하던 시간은 많은 게 설핏하고 흐린 것 중에서도 새삼 마딘 순간 중 하나다. 방학역 뒤편에 자리한 큰 카페 구석에서, 누구와 함께해야 할지, 함께 해주긴 할지 고민하고 나누던 세세한 시간들.
와중 나는 회계는 꼭 남자로 뽑고 싶었다. 이유는 하찮다. 역대 회계가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가 해도 되지 않나 하는 수준이었다. 그걸 빼면 크게 가릴 게 없었다(가릴 만한 처지도 아니었다). 그해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날까지, 내 모든 날은 임원단 구성을 위해 사람들과 연락하고 만나는데 다 쏟았다 해도 과언이 아녔다. 그렇게 몇 명은 직접 만났고, 몇 명은 친구의 친구처럼 데려온 여섯 명으로, 나와 테디를 포함해 총 여덟 명이 '쏘스윗' 임원단이란 이름 아래 결성됐다. 누구는 큰 생각 없이, 누구는 몇 번이고 거절하다가, 누구는 전 임원단이 재밌어 보여서…동상이몽 집합체였다, 우리는.
얼굴은커녕 이름도 겨우 외운 사이들끼리 과연 1년을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 있을까? 셀도 하고 회의도 하면서, 운영과 양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그늘 속 언더독이었던 주제에 양지로 불쑥 튀어 올라선 각종 주목과 관심을 받게 된 우리가 끝까지 공약한 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당시엔 그런 의심과 고민, 생각은 티끌도 들지 않았다. 내겐 당장 다가오고 있는 거대한 사역이 먼저였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각 역할에 사람을 채웠다는 자족이 앞섰다. 첫 모임이랍시고 정육 식당에 모여 앉아서 각자 어색하고 어설프게, 낯설어하며 기대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들었던 날이 있다. 의자도 부족해 한 명은 우유 박스에 대충 걸터앉은 채 다가올 19년을, 각자의 안부와 안녕을, 새해 계획을 나눴던 날이.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보잔 각오로 불티 같은 생기를 눈에 담은 채 서로를 바라봤던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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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역은 특별 새벽 기도회였다. 신년 맞이 예배에는 각 교구와 교육 부서가 돌아가며 특별 찬양을 부른다. 청년부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끼리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특송 부르는 자리로 불러야 했다. 크게 보면 단순한데, 작게 쪼개면 할 일이 제법 많다. 지휘자 선정, 예배팀과 협의, 차량 배차, 운전자 섭외, 식사(라고 하면 거창하고, 김밥과 음료 정도다) 주문 및 배달. 물론 제일 큰일은 사람들을 '이 자리'로 '데려오는' 거였다.
누군가에겐 쉬운 일이겠지만 내게 아직도 어려운 건 모객이다. 영업, 홍보. 지금이야 덜해도 그땐 잘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테디나 윤슬 같은 넉살 좋은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아주 힘들었을 거다.
그러나 사역은 언제나 꼭 같은 무게의 쇠와 설탕을 같이 안겨준다. 안고 있을 땐 장난하냐 싶을 정도로 무겁고 차가운데, 당장 양팔에 조금이라도 힘이 떨어지면 발등을 찧다 못해 곤죽으로 만들 성싶은데 과정마다 미묘한 감동, 희미한 기쁨, 연약한 믿음과 감사를 주다가 끝나면 기분 좋은 만족감을 크게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 꼭두새벽부터 나와 잔뜩 잠긴 목소리와 퀭하고 부은 얼굴로 노래를 부르고 속삭이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기분에 사로잡혔다. 야릇한 만족감. 똑 떨어지지 않는…얼떨떨한 무언가.
처음 맡은 일을 해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 압박감, 부담에서 간신히 해방됐기 때문에. 묘한 뿌듯함도 있었다. 할 수 있구나, 느끼게 해준 사역이기 때문에 이다음도 해낼 수 있겠구나, 이대로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