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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에게 사실은 나도 회장 선거에 나가게 되었다고 할 때 걔 표정과 반응이 기억나진 않아. 하지만 그 후 일 년 내내 걔랑 안 좋은 의미로 얽혔으니까 썩 달가운 반응은 아니었을 거야. 그건 차차 풀어 나가기로 하고…선거에 나가겠다고 결심한 후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부회장 찾기'야. 우리는 두 명이 한 팀이 되어서 나가는 시스템이었어. 회장 후보 하나, 부회장 후보 하나, 개별로 나누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둘이 나와야 하는데, 이 첫 번째부터 난관이었지. 사람이 없었어. 내가 알고 친한 사람들은 이미 많게는 서너 개 사역을 도맡은 꿀벌 같은 이들이거나 '임원단'이란 장기 사역은 부담스럽다 말하는 이들이었어. 당연해. 지금 떠올려도 내가 진짜 여름이를 위해 나선 거구나 싶어. 그게 어떤 무게고 깊이인지 숙고하지도 않고, 그냥 그 애 말 한마디에.
후보 등록은 9월까지고, 내가 결심한 건 7월인가 8월, 대충 여름 막바지여서 시간이 아주 넉넉하진 않았어. 누구든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이때 만난 게 테디야. 발견했다고 하는 게 맞겠구나. 원래 알고 있었거든. 같이 인도네시아 단기 선교도 다녀왔으니까. 다만 그전까지 테디도 좀좀따리 아웃리치(국내 선교)와 셀(예배 후 나눔 모임) 활동만 조용히 하고 있었을 뿐 얼굴 드러날 활동은 잘 안 했어. 같이 팀했던 사람들이나 알음알음 아는 정도. 나도 사실 그땐 테디와 친하지 않았어. 뭐라 그러지, 다 같이 모일 순 있지만 둘이 만나긴 어색한…낯선? 사이. 굳이 둘이 따로 만날 이유가 없는 관계. 테디는 내 후보군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는데, 미소가 알려준 거야. 미소랑 밥 먹으면서 사람이 없다, 누가 좋을까 얘기하다가 나온 거지. 미소와 테디는 절친이었어. 딴 소리지만 그때 대체 나는 누구랑 친하게 지냈는지 기억이 안 나네…온갖 사람 다 만나느라 구분 두지 않았던 것 같아. 그때만큼 애정과 에너지와 사교성과 사회성을 발휘한 때가 있었나 싶고.
아무튼, 마침 테디와 나는 공동체에서 열린 페미니즘 강의를 듣고 있었어. 말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었지. 나는 온갖 거절을 듣느라 깊이 생각할 겨를도 기력도 없어서, 테디와 내가 어울리고 말고에 대해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냥 테디? 음, 좋은 애였지. 성실하고 밝고. 거의 무슨 인사 담당자처럼 생각하고 바로 강의가 끝나자마자 얘기를 꺼냈어. 테디야, 혹시 시간 돼?
테디한테 내가 한 세 번은 제안했을 거야. 신기한 건, 테디가 어쨌든 난색을 보였고 고민하는 기색이 또렷하게 느껴졌을 텐데도 내가 포기하지 않은 거야. 난 보통 한 번 하고 아니면 더 물어보지 않아. 이미 싫다/곤란하다/어렵다/힘들다 말했는데 거기다 뭘 더 얘기하겠니? 어쩌면 구질구질=찌질함, 으로 등식 성립이 돼버려서 찌질한 사람 되기 싫은 마음으로 그런 걸 수도 있고. 하여튼 테디가 곤란해하면서도 아주 싫은 티는 내지 않아서, 제갈공명 찾아가는 심정으로 한 삼 주를 보냈던 것 같아. 매주 목요일마다 강의를 듣는데, 두 번은 그렇게 짧게 이야기했고 마지막 만남 땐 한 시간이면 된다고, 강의 듣기 전에 카페 가서 잠깐 얘기 좀 하자고 질척거렸어. 심지어 그때 테디가 할지 안 할지 결정도 안 했는데 후보 신청서까지 꺼내 들고 엄청 진지하게 구구절절 떠든 기억이 나. 테디는 내가 너무 구질구질하게 굴어서 으이구, 하고 해준 건지 뭔지 모르겠네. 물어봐도 기억 못할 거 같아. 나도 그냥 어렴풋한 기억, 흐릿한 장면으로만 떠오르는 순간이거든. 그치만 때로는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민망해도 매달려야 할 순간들이 있더라고. 아니면…아주 간절하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하등 의미도 소용도 없구나, 느끼게 되는 때가. 나는 그때가 그런 시간이었어. 더 이상 밀려나면 안 된다, 하는 직감이 강하게 머리를 꿰뚫은 때가.
2019년 9월 27일, 테디에게 같이 하겠다고 서명받은 카페에서 마침내 후보 등록용 사진을 찍었지. 사진만 있고 일기나 다른 기록이 없어서 앨범을 보면서 글을 쓰는 중이거든? 새삼 웃기고 신기해. 내 기억보다 앳된 얼굴들이 민망과 어색에 어설픈 미소 짓고 있어서. 어른! 이라고 은연 중 인지하고 있었는데 5년 전 얼굴은 그냥 둥글둥글 맹한 것들이라서.
둘이 어떻게 찍어야 조금 더 회장(후보)답고 어른스러울 수 있을까, 하면서 온갖 구도로 찍다가 웃느라 망한 사진들도 대거 발견했는데, 이땐 그냥…재미있었어. 누구를 이길까, 잘해야 하는데, 뭐 이런 고민과 강박 속에 한 게 아니라, 그냥 새로운 경험을 한단 느낌이 더 컸어. 진짜 우리가 이길 거란 생각도 없어서 더 그랬겠지. 나는 다만 앞서 말한대로 여름이의 말에 무게를 더 둔 편이었고, 우리 입지는 냉정하게 따지자면 변방 주민…아웃사이더였으니까, 인지도도 낮은 우리가 이길 거란 생각을 아예 안 했어. 그래도 해보자, 하기로 했으니까 끝까지 부끄러울 짓은 하지 말자, 란 마음가짐만 뚜렷했고. 심지어 이때 셀 리더 하면서 특송(그것도 춤을)하고, 졸업 학기라 졸업 전시도 준비해야 했거든. 한 가지에만 올인하기엔 영 어려운 상황이었지. 진짜 스스로 후련할 수 있도록 하자, 정도의 결심이었어. 져도 상관없지만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나름 공동체에 대한 비전, 임원단을 꾸릴 때 마음가짐과 내가 가질 태도를 고민하면서 여러 책을 살피고 읽었는데, 나는 이런 마음으로 하고 싶었어.
정작 예수는 성서 그 어느 곳에서도 종교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화된 종교나 교리들이 인간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면
신랄하게 비판했다. 예수의 주요 행적과 가르침은 종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들의 삶에 관한 것이다.
개별 인간들이 이 현실 세계에서 경험하는 육체적•정신적 배고픔,
의미에의 목마름, 다층적 아픔, 헐벗음, 소외된 주변인 등에 대한
책임과 환대가 바로 예수를 따른다는 의미이다.
예수는 다양한 소수자들에 대한 사랑이
바로 신에 대한 사랑과 같음을 가르친다.
환대와 애정. 내가 받은 애정 그대로를 다시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 교회고 뭐고 죽고 싶은 마음으로 떠나있다가 돌아왔을 때, 온갖 어려움과 슬픔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예수님은 누구인가, '내' 하나님은 누구시지? 알게 하고 사랑을 주고받게 해준 공동체를 위한, 집 같은 곳처럼 여기게 해준 공간을 위한, 은혜에 보답하고픈 마음으로.
새삼 나는 한결같이 소수자에 대한 사랑과 환대를 중요시했구나 싶어. 그때 마음과 생각은 얼핏 사라진 듯 보여도 아주 조용히 은밀히, 크기를 키워나갔구나. 티끌이 쌓여 언덕을 만들었구나…하는. 왜냐하면 결국 내가 저번 편지에도 얘기했지만 그런 소수자를 위한 예수님, 에 대해 나누고 알리고 싶어서 외부 기획단에 들어갔으니까. 물론 다른 것들도 쌓아뒀지. 이런 글귀도 있었네:
본성 안에 있는 악의 쌍두마차는 '지독한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이라고 한다. 여기서 게으름이란 성장을 위한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적극적 나태함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한나 아렌트의 '무사유의 죄'에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생각하는 고통, 생각 끝에 올 변화와 성장의 고통을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적극적 수동성이다.
사유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 착한 나쁜 사람이라면, 성찰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인간은 "의인이라 칭하는 죄인"이다. 과도한 자기만족의 사람이다. 바리새인들의 치명적 잘못이 율법을 칼같이 지키는 그 자체가 아니라 '이만하면 됐지!'라는 종교적 우월감에서 비롯한 자기중심성이다.
그들은 마침내 자신의 게으름과 나르시시즘을 끊임없이 성찰하고 그에 따라 자신을 정화하는 일이 각 개인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한 개인적 정화는 각 개인의 영혼의 구원뿐 아니라 그들이 속한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터득할 것이다.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먼저 돌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마음, 생각, 느낌, 감정, 의견과 의문을 가득 품은 채 선거를 준비했어. 나한테 부끄럽지 않겠단 마음 하나로, 졸업 전시보다도 열심히. 아직도 초한산 뒤 달리기 트랙을 빙글빙글 돌면서 대본 외우던 기억이 난다. 한낮에, 하도 읽고 잡아서 잔뜩 구겨지고 더러워진 종이를 붙잡고 빙글빙글 계속 돌던 시절이.
그리고 선거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