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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 글을 쓴 날은 부활절이야. 예수님이 죽었다 사흘 만에 살아나신 날을 기념하는 축일이지. 저녁에 같이 임원단 했던 친구들을 만났는데 기분이 묘했어. 부활절에 근 5년 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니까 꼭 그때로 다시 되돌아 간-부활한 느낌이었거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샤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 서로 그래도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아서 만날 수 있었다고, 감사한 일이라고. 그때 나는 임원단 친구들한테도 사실 속상했고, 화가 났고, 답답했고 짜증 났는데 말이야. 오늘 본 그네들은, 그래, 우리가 엉망진창에 우둘투둘한 사랑이라도 서로 건넸다고 느끼게 해줬어. 지나갈 건 지나가는구나 싶고. 지금 벌어진 순간의 슬픔과 어려움도, 언젠간 웃으며 안녕하고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안녕, 하고 가볍게 인사를 건넬 수도 있겠지. 빈 마음을 품고.
20년 2월에 쓴 일기 한 토막을 (간신히) 발견했는데, 이렇게 썼더라: 작년 나는 감사한 게 세 가지밖에 없었다. (…) 같이 있는 동역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연말이면 한 해 소감을 나누는 자리가 있어. 내가 그렇게 얘기했거든. 다른 건 잘 모르겠고 감사한 게 세 가지라고. 진짜 생고생 갖은 고생 다 했는데, 내가 왜 여기서 이런 비난과 비방을 듣고 버텨야 하는지 진짜 많이 억울했는데, 혼자가 아니라서 정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를 짜증 나게 만든 건 사람인데, 회복시켜 준 것도 사람이라 참 아이러니하다, 느꼈던 시간이었어.
나는 사람에게 참 관심이 없어. 지금은 한결 나아졌는데 예전엔 더 심해서, 누가 사적 얘기하면 '이걸 지금 나한테 왜 얘기하는 거지?' 생각한 정도야. 아무튼 남한테 큰 관심 없는 만큼, 선 안에 들어온 사람 얘기는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는 편이야. 믿음도 신뢰도 덥석 주는 거지.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하고. 내가 선택한 거진 반은 그런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여 벌어진 상황이 많아.
회장도 그래. 여름이가 중얼거린 속삭임이 아니었다면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나와 여름이는 '특별새벽기도' 스태프였어. 새벽에 일어나서 자리를 안내하고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해서 교회에서 꼬박 일주일을 숙박했단 말이야. 우리는 그 밤에 각종 얘기를 뒤섞어 말하다가 당시 핫이슈였던 선거 이야기를 나눴어. 여름은 가볍게, 칭얼거리듯 불티가 되면 괜찮을까? 걱정이야…했지. 동트기도 전에 일어나야 해서 바로 잤지만, 내 마음엔 이상하게 그 한마디가 메아리치고 있었어. 가벼웠지만 분명 걱정하는 말투. 묻어나는 감정. 그건 일어나서 안내하고 예배드리고 식사 준비를 하는 내내 흐려지지 않았어. 여름이 휙 던진 말이 나한테는 쐐기가 돼서 박힌 거야. 누구한테 털어놓지 않으면 뽑히지 않을 무게가 돼서.
마침 같이 있던 초록에게 마음을 털어놨지. 사실 이런 말을 들었는데, 이상하게 신경 쓰이고 지워지지 않는다고. 초록이 듣더니 반색하면서 한낮을 불렀어. 우리 다-심지어 초록과 한낮은 당시 임원단이라 더 피로에 찌들어있었는데도-스태프라 컨디션도 영 저조한데, 그 이른 아침에 설렁탕을 먹고 카페까지 가서 한참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어. 나는 생각도 자신도 없었어. 심지어 그때 불티가 나한테 부회장 제안을 했는데 거절한 상태였거든. 그 와중에 뜬금없이 출마 선언을 하면 걔는 나한테 너무 배신감 느끼지 않을까? 불안 반 민망함 반, 걱정과 괜히 말했단 후회가 섞여 있었어.
그렇지만 결국 나섰지. 여름의 한 마디가 내내 지워지지 않았고, 초록과 한낮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게다가 그들은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는 논리적인 사람들이라 '시도는 해볼 수 있겠다'는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었어. 그 시절엔 나도 공동체를 사랑했고, 더 교만했고, 더 가벼웠거든. 아니, 어쩌면 너무 무거워서, 한 번 살짝이라도 기울어지면 다른 방향으로 넘어가거나 흔들리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진 걸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땐 사랑하니까 내가 나서야겠단 마음이었어. 사랑과 애정으로 충만해서, 뭐든 내가 사랑하는 이곳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어여쁘지만 순진한 마음이 물씬한 거야. 제대로 해본 건 없지만 어쨌든 하면 초록이나 다른 사람들이 날 도와주지 않을까? 이렇게 열변을 토했는데 같이 으쌰으쌰 열심히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물론 있었고.
혼미한 정신과 충만한 사랑과 뭉툭한 오만으로 나는 하겠다고 말했어.
될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해보겠다고. 최선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