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Place New (13)
D가 D에게 #25 Some Place New (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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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함, 불편함, 불확실한 느낌이
결코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그 감정이 너의 성장점이 되어줄 거야.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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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잘 지냈어? 아프진 않았고? 설 연휴는 잘 지냈는지 몰라. 오늘 마지막 휴일인데 끝까지 안녕하고, 잘 먹고, 잘 놀길 바라. 물론 나는 이제 대다수 연휴와 공휴일 흐름과 다른 패턴으로 일하니까 어제도 오늘도 일했고 일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괜찮아. 물론 좋아한다고 몸을 마구 굴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 너무 나대지 말아야겠지. 음력 1월 3일, 묵은해는 몽땅 밀어놓고 새로운 한 해를 또 기쁘고 아름답게 맞이하도록 합시다. happy lunar dayꔣ₊˚.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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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여행은 좋았지만, 다시 가라고 하면 와! 하고 룰루랄라 즐겁게 가겠지만, 짠내 투어는 힘들어・・・숙소비가 추가로 몇십만 원이 들어서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어. 나는 외식을 다섯 번 정도 한 것 같아. 지인과 세 번, 나 홀로 두 번. 사실 바깥에서 사 먹는 모든 걸 외식으로 쳐야 한다면 1달러짜리 얄팍한 피자 조각과 소시지에 머스타드만 덜렁 뿌린 핫도그도 포함해 일곱 번 정도라고 해야겠지.
여행하면서 움츠러들진 않았지만 대담하지도 않아서, 피자 가게에 나 하나 앉을 자리가 있었는데도 괜히 쭈그러든 채 밖에서 우적우적 씹어 먹은 기억이 나. 조금 쌀쌀하고 서늘했어. 덤불 무성한 난간에 대충 기댄 채 피자를 씹어 먹는데, 옆에 똑같이 영혼 없는 얼굴로 정면 응시하면서 피자 먹는 아저씨가 있어서 조금 위로가 됐지. 물론 그는 두 조각이었고 나는 한 조각을 개미처럼 야금야금 아껴먹고 있었지만 그게 어디야. 핫도그는 메트로폴리탄 들어가기 전 시각이 점심이었거든. 뭐라도 먹고 가야 돌아볼 체력을 얻지 않을까? 해서 산 거였어. 그렇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지. 거긴 관광지고, 관광지 음식은 대부분 허접한데 가격은 왕창 비싸다는 사실을・・・'◡'(아임 파인 아임 낫 오케이) 그렇게 허접하게 먹은 음식들이 꽤 있어. 물론 이제 그 식당과 카페가 허접한 게 아니라, 내 지갑이 허접해서 맞춰 먹다 보니 그랬다는 뜻입니다. 그 와중에 시그니처/시즌 커피나 디저트는 먹으려고 밥보다 거기에 비중을 더 뒀던 광인이었지. 아몬드 크루아상, 애플파이・・・그거 아니면 견과류와 과자 같은 걸로 점심을 여러 차례 때웠어. 근데 그땐 막 배고프진 않았어, 신기하게. 물로 배 채운 덕분인가 싶기도 하고.
사실 이런 건 괜찮았어. 과일 먹고 싶어서 고민에 고민을 제곱하다가 결국 할인 태그 두 번 붙은 쪼그라든 과일 사 먹는 것도, 눈앞에서 보고 싶지 않은 비보잉 직관하며 이 인간 나한테 돈 달라는 거 아니야 하고 쫄았던 지하철도, 대마 트럭인 줄 모르고 예쁜 아이스크림 트럭~하면서 사진 찍었던 것도, 숙소 옮겼는데 현관 열쇠는 보이지도 않고 호스트는 연락이 안 돼서 추위에 발발 떨며 현관 앞에 있다가 1층 사는 사람들이 열어준 것도, 그 와중에 내 침실 열쇠도 없어서 다른 게스트가 내 방문 따준 것도, 한 달 치 유심 다 써서 본래 유심으로 바꿔야 하는데 빼낼 핀이 사라져서 별 생쇼하며 겨우 갈아 끼운 것도 다. 내가 안 괜찮은 건 비행기였어. 그래, 내가 타고 귀국할 비행기・・・그게 가장 문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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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예매할 땐 SFO에서 JFK, JFK에서 SFO라는 아주 순조로운 장소였어. 뉴욕에서 JFK까진 멀지 않고, 지하철인가, 버스 타면 슉슉 갈 수 있었지. 그래서 마음도 편하게 브루클린에 마지막 거처를 정했거든. 브루클린 아주 힙하군! 이러면서 태평하게 관광하며 돌아다니고 있었지.
근데 갑자기 메일이 왔어. '헤이! 네가 탈 비행기 엔진에 문제가 생겨서, 비행기가 바뀌었어. 너 여기로 몇 시까지 가야 해.' 거의 이 수준의 통보 메일이었지. 엔진에 문제 생겼다는데 뭐 어떡해, 그냥 적당히 읽고 음 그렇구나, 시간만 바뀌었네? 하고 다른 일 하고 있었는데 뭔가 좀 쎄해. 사람 육감이라는 거 있잖아. 직감. 난 그런 게 정말 없는 사람인데 생존(거창하지만)과 직결되면 아무리 없는 사람이라도 빠박! 오는 게 있더라고. 메일을 다시 열었어. "너 여기로・・・"의 여기가, 뉴욕이 아닌 거 있지. "뉴어크newark"였어.
뉴욕newyork, 뉴어크newark. ◕‿◕・・・◕ ◡ ◕・・・༼ ᕤ◕◡◕ ༽ᕤ
내가 그때 얼마나 맑은 눈 광인으로 메일을 쳐다보고, 고객센터에 문의까지 넣어가며 빡쳤던지・・・동선이 진짜 와장창 박살 났거든. JFK를 위해(꼭 그건 아니긴 했지만) 아래쪽에 잠자리 구한 건데, 갑자기 뉴욕도 아니고 뉴어크? 뉴왁? 난생처음 듣는 지명에 황당해서 찾아보니까, 뉴욕 주가 아니라 뉴저지래. 옆 동네 수준이 아닌 옆 주・・・심지어 출발 시각도 아침 여덟 시로 변경됐더라? 갑자기 돌아버리겠더라고. 안 그래도 브루클린 오면서 에너지도 기력도 다 썼는데(위에 숙소와 유심 빼야 했던 시기가 이때였단다), 시트콤 에피소드가 참 많군, 이러고 있었는데 나를 망치러 온 내 여행의 개짱나 어플리케이션・・・익X피디아・・・
못 바꿔준다고 해서 순순히 교통 앱을 켰지. 나는 안 되는 걸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타입이 아니야. A가 안 되면 바로 루트 B를 찾는 사람이지. 일단 택시는 미친 가격이었어. 170인가, 180달러였는데, 그렇게 하고도 내가 과연 안전하게 도착할까, 가 의문이었어. 참고로 나는 워싱턴에서 뉴욕 돌아올 때도 기차가 220달러라는 미친 가격을 보고 기어코 버스를 찾아내 탄 사람이었어. 물론 그 와중에 카드가 안 돼서 출발 1분 전에 겨우 웹사이트 찾아가지고 결제해서 탄・・・그땐 그랬지, 정도 에피소드가 작게 있었지. 아무튼 돈 없어서 식주도 쥐어짰는데 갑자기 이 믿을 수 없는 택시에 170달러? 미쳤지 미쳤어. 절대 안 돼.
두 번째로 본 게 대중교통이었어. 감사하게도 뉴욕은 24시간 지하철이 돌아가. 그게 아니었다면 피눈물 흘리며 택시 탔겠지・・・확인하니까 지하철 타고 어떤 역에 내려서 기차 타면 된다지 뭐야. 한 번 환승하고 기차 승차 정도면 뭐, 나쁘지 않지. 문제는 시간이었어.
아침 여덟 시 몇 분 비행기면, 세 시간 전에는 도착해서 대기해야 해. 근데 일단 그게 새벽 다섯 시 정도고, 다섯 시 출발~! 이 아니라 도착, 이니까 나는 최소한・・・넉넉잡아 새벽 세 시에 나가야 하는 거지. 왜냐면 초행길인 데다 지하철에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르니까. 파업이든 사고든 났다 하면 루트를 다시 짜야 할 텐데, 시간이 넉넉해야 제2안을 세우고 할 수 있잖아. 결국 결론이 났지.
아, 두 시 반에 나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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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마지막 샤워를 마무리하고, 옷도 다 정리하고, 바로 나갈 수 있게 다 챙겨입고 가만히 누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새벽에 캐리어 끌고 계단 내려가면 너무 민폐지 않나?' 숙소가 2층인데, 계단이 꽤 있었어. 그리고 함부로 들락날락 못하게 창살 문으로 잠겨 있었고. 근데 1층에도 사람 살고, 내 옆방, 옆옆방 다 사람들이 묵고 있었단 말이지. 내가 그 와중에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내려가면 그 집 사람들 다 깰 것 같은 생각이 확 드는 거야. 내가 힘이 세서 그걸 휙 들고 폴짝거리며 내려갈 사람도 아니고. 안 되겠다, 1층에 미리 내려놔야겠다! 하는 결론이 듦과 동시에 몸을 일으켰어. 겁나 끙끙거리면서 내려놓고 다시 눕는데・・・눕자마자 또 이런 기분이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거 있지: 불안.
누가 내 캐리어 훔쳐 가면 어떡하지? 노트북도 훔쳐 갈까 봐 화장실도 안 갔는데 캐리어를 이렇게 통째로 둬도 되나? 집인데 훔쳐 갈까? 누가 냅다 가져가면? 가져가서 모르쇠하면? 항의할 영어 수준은 되나・・・이러다가 기절한 것 같아. 기절할 만 해. 이미 그때 자정 넘었거든.
알람 처음 울리자마자 눈이 빡 떠지더라. 잔 게 아니라 정말 눈만 감았다 뜬 느낌이었어. (그놈의) 열쇠로 문 잠그고, 문 열고, 다시 잠그고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보이는 내 큼직한 캐리어란! 정말 얼마나 안심했는지 몰라. 아무도 훔쳐 갈 생각조차 안 했는데(내가 봐도 관광객보단 배낭 여행객 무드였어) 나 혼자 감사와 기쁨을 열렬히 느끼며 겨우, 겨우 문을 열고 걷기 시작했어.
새벽 거센 추위와 칠흑 같은 어둠을 길동무 삼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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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몇 번 말했지만 최대한 그때 상황을 상세히 말해줘서 어땠는지 조금이나마 생생하게 느꼈음 하거든(물론 이 엉망진창 우당탕탕 에피소드를 그렇게 세세히 적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지금 들었지만 다 썼는데 뭐 어떡하니 견뎌).
다음 주에 이 뉴욕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미국에서 진짜_진짜_최종.txt를 나눠볼게. 물론 그것도 길어질 수 있지만, 원래 사람이 얘기하다 보면 살도 붙고 근육도 붙어서 더 주저리주저리 하게 되는 법이야. 오늘따라 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처럼 말하게 되는 이유를 모르겠네・・・아무튼, 다음 주에 또 보자. 평안하고, 안녕해. 샬롬, 내 친구. 따뜻하고 다정한 시간과 공간에 머물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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