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편지는 잘 받았니? 그 편지도, 이 편지도 모두 네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참고가 되면 좋겠다. 네가 기억했으면 하는 건 정말 그거야.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노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올곧은 일직선이라는 것도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 네가 살아가며 겪을 무수한 경험과 시간이 너만의 길이 되줄 거라는 걸 말이야.
나는 학교를 두 번 갔어. 어쩔 수 없이 갔던 첫 번째 학교를 나와 삼 년 동안 전혀 관계없는 회사들에서 일했지. 무익하지 않았냐 할 수 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어. 덕분에 집에 생활비 보태고, 학원 가고, 책을 사거나 전시회 가면서 나름 소소하지만 중요한 시도들-기타가 기타인지 알 수 있는-을 할 수 있었거든. 그러면서도 하고 싶어 했던 건 계속 마음에 품었던 것 같다. 아, 난 디자인을 고등학생 때부터 쭉 하고 싶었어. 미술 학원 갈 형편 안 되니까 체념하긴 했는데, 꾸준히 시도 했지. 좋아하는 배우 사진 보정을 해보거나 친구들에게 줄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본다거나 하는 따위의 꾸준한 시도 말이야. 그때 그건 정말 꿈이었어.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아주 막연한 꿈. 그래도 그 작업이 좋으니까, 내 결과물이 못나 자괴감이 들 때도, 그냥 쉬고 싶을 때도 꾸준히, 띄엄띄엄 이라고 해도 마음 하나만은 꾸준히 부여잡고 있었어.
그렇게 붙잡고 있으면 문이 열려. 로버트 하인리히가 쓴 「여름으로 가는 문」이란 소설이 있는데, 너무 옛날에 읽어서 기억은 흐리지만 마지막 문장이 인상 깊었어. 덕분에 문은 하나가 아니고 여러 개고, 때로는 홑문 아니라 겹문이라는 걸 알게 해줬거든.
"그리고 녀석은 문들을 몽땅 열어보면 적어도 그중 하나는 여름으로 가는 문일 거라는 확신을 아직도 갖고 있다."
어떤 건 손쉽게 열릴 거고, 어떤 건 열었는데 문이 있고, 열었는데 또 문의 반복일 수도 있고, 어떤 건 방 탈출 하나 싶을 정도로 꽉 잠긴 문도 있겠지. 그렇지만 문을 열기 전까지, 또 열어젖히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여름'이 나올 거야. 내가 학교 두 번 갔다고 했지? 나는 나만의 여름을 찾을 수 있었거든. 예대에 들어가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삶. 나는 그래서 네가 일단 막연하게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이걸 계속할 수 있다면 다른 건 놔버려도 좋단 생각이 드는 것, 힘들고 지루한 구간이 있더라도 참고 견디며 혹은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할 수 있는 걸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네가 계속 꾸준히, 줄기차게 마음에 간직하고 가져갈 수 있는 무언가.
물론 이게 끝은 아니야. 그 안에서도 계속 너는 시도하고 경험하고, 말해준 것처럼 '방황'을 끊임없이 해야 해. 내가 학교를 나오고 여러 일을 하면서 {디자인} 안에서도 [의미를 담은,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조금 더 뾰족한 길로 나선 것처럼 말이지. 아마 이마저도 또 바뀔 거야! 왜냐하면 그건 그간 쌓아온 시공간을 통째로 버리는 게 아니라, 더더욱 '나답게' 가는 여정 중 하나일 테니까.
내가 참 좋아하는 이미지가 있는데, 거기 나온 텍스트 인용을 마지막으로 글을 줄일게. 뭘 하든, 주님은 네가 기뻐하는 걸 더 기뻐하고 응원하며, 위로하고 격려하신다는 걸 꼬옥 기억해 줘.
"당신은 당신의 꿈을 어느 나이에나 이룰 수 있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30살에 목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베라왕은 40살이 될 때까지 드레스를 디자인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청년들은 자기가 누군지도 아직 모르면서 누군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거예요. 23살의 오프라 윈프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해고를 당했어요! 해고당하는 오프라를 상상해 보세요."
"맞아요! 그건 실수였죠."
"아니요.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녀가 오프라가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오프라 윈프리가 되기 위해 해고라는 경험이 필요했던 그저 23살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어요. 때때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해야 합니다."
이 글이 또 다른 D, 너에게도 한 움큼의 용기와 참고가 되길 바라며. 한 주 또 따뜻하고 다정하게 보내길 바랄게. 다음 주에 보자.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