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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날이 차가워서 별생각이 드는 건지, 피곤해서 그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또 파도가 치는 중이야. 문득 외롭단 생각을 했어. 나는 쌓아둔 말도 생각도 너무 많은데 이건 대체 누구한테, 어디에 풀 수 있지.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참고 견디면서, 묵묵히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걸까?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슬픈 건 어디에도 말할 수 없다는 말을 이해해. 공감하고. 그건 아마 훗날 소중한 사람이 생겨도 마찬가지가 될 거야. D가 너는 왜 그렇게 비밀이 많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겁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고, 효율 때문이기도 해.
이 글 쓰기 직전, 찻물을 끓이며 불현듯 오늘은 이 횡설수설을 풀어보자 결심했어. 푼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고, 토해내자, 가 명확하겠다. 짧고 굵은 생각과 의문이 또 한가득 머물러있어서, 어디에라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예전에 말했듯 횡설수설과 불규칙한 파도도 보여준다고 했으니까・・・.
1월 말부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게 됐어. 기독교 기반 성소수자, 장애인, 페미니즘, 환경 행사 및 강의 기획 단체인데・・・아직 직접 얼굴 맞대고 인사하진 않았지만 장애인 친구가 있어. 저번 주에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나갔다가 맞고 연행되고 풀려난.
나한테 사실 전장연 시위는 '옳지만', 정도 감상이었어. 깊게 찾아보지 않았지만 리프트를 타고 가다 사망한 이로부터 발발한 시위고, 십 년 넘게 지속한, 어떻게 보면 씁쓸한 장거리 운동이다, 정도. 이유는 아주 간단해. 나는 물론이고 내 친구, 지인, 가족 누구도 거기 속하지 않았거든. 내가 관심 가질 이유가 적은 거야. 심지어 아빠가 장애 4급으로 다리를 저는데도. 그는 그런 운동이나 시위, 연합에 대해 한마디도 한 적 없고 나가지도 않았어. 우리 가족은 그의 아픔에 대해 추측만 했지. '아마도 이 정도일 것이다'. 외출할 때마다 불편해하는 걸 알았지만 정말 그뿐이었어(가족사에 대해 언젠간 말할지도 모르겠지).
언제나 '저쪽' 혹은 '그쪽'이었던 곳이, 한순간 '이쪽'이 된 거야. 내 삶에 일정 부분 연관된, 그러니까 타인 아닌 네가 된 거지. 우리.
사실 지금 이 일화 쓰는 것도 조심스러워. 내 삶, 내 생각이나 배경 혹은 환경 얘기하는 건 괜찮아. 필요하다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고 질문도 주고받을 수 있어. 다만 앞서 말한 이야기는 내 고민이면서 그 친구의 삶이니까・・・당사자 아닌 내가 멋대로 써도 되냐? 하는 고민이 돼. 그래서 최대한 간결하게 썼지만・・・잘 모르겠다. 맥락 없이 이런저런 점이 고민이야, 하면 알맹이 없이 뱉어내는 게 되니까 쓴 거긴 해. 내가 느끼는 고민은 이거거든: 그런 일 겪은 친구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지?
혹시 너에게 이런 경우가 있다면 내게 알려주면 좋겠어. 오늘 물어봐야지, 했는데 타이밍을 못 잡아서・・・메시지로 물어보긴 할 거야. 다만 조금 더 친밀한 너에게 털어놓고 싶었고, 물어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인트로에 쓴 인용구도, 와닿는 거라 적어둔 거야. 이제 다른 얘기인데 난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다른 친구한테 이름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한다고 했거든. 별명으로 많이 불린 탓도 있고, 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ㅎ)답게 각종 익명과 닉네임으로 생활한 전적도 길어서 그래. '누구에게는 명확한 존재'겠지만, '누구에게는 없는 존재'라는 말 내게도 해당하거든. 사실 이 편지도 그렇지 않니? 누군가에겐 명확한 상이 그려지겠지만, 누군가에겐 이야기만으로 쌓인 얼굴 없는 형체겠지.
나는 나라는 사람이 뭐라 딱 정의 내려지는 걸 싫어하는데, 그 순간 거기 묶여서 그대로 행동할 거란 걸 예감해서 그런 거 같아. 그래서 인터넷으로는 정말 온갖 닉네임을 쓰는 거고, 실제로 말하지 않고 감춰둔 마음을 온라인상에서 뱉기도 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거고. 나지만 나 아닌 등장인물들이 일정 부분 내 마음을 대변해 주니까. 그냥 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할 수도 있지만 입 밖에 꺼낼 때도 정리해서 내보내고 싶어. J의 통제력은 자기 말도 (당연히) 조절합니다(뻥).
오늘의 구구절절, 주저리주저리 끝! 글 쓰는 건 고독한 일이고, 공통성 아니라 단독성 추구하는 일이란 말이 떠올라. 나는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모두 이 분야의 일이라서 어느 순간 이렇게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아. 괜찮다가도 어, 하고 휘청이는 기분. 도대체 내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거지, 하는 그 형용 못 할 찜찜한 기분이 있어.
어쩌면 지금이 걷다가 돌아갈 순간일지도 모르겠어. 삶은 나아가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예전의 내가 말했듯.
네 한주는 어떨까, 지금 나처럼 찰나 숨이 막혔거나 이상한 고독감에 사로잡혀서 붕붕, 습도 높은 공기에 떠 있을까? 그렇다면 너도 돌아갈 갈림길에 섰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혹은 위로 가는 게 아니라, 뒤 혹은 아래로 가는 기점.
산에 가봤다면 알겠지만 마냥 오르는 게 아니거든.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어느새 도달해 있는 거야. 우린 그런 지점에 서있는 걸 거야. 그러니 오늘도, 이번 주도 겁먹지 말고 가보자.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