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Place New (11)
D가 D에게 #21 Some Place New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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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함, 불편함, 불확실한 느낌이
결코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그 감정이 너의 성장점이 되어줄 거야.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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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한 주 잘 보냈니? 일주일 근황을 말해주고 싶은데 기억이 흐릿해. 기억해 내려면 이제 사진 보면서 떠올릴 수밖에 없더라. 어떤 얘기들은 너무 사소해서 굳이 적을 필요가 있나 싶긴 해. 물론 예전에 이 소리 했다가(정확히 말하면 일상을 왜 얘기하냐였긴 한데) 사소한 낱낱을 보고 싶단 뜻이라고 답을 들어서 아주 특징적이지 않아도 꾸준히 담아두는 중이야. 사소함이 쌓인 게 삶이니까.
아, 그래도 속초에 다녀왔다. 가을 바다는 누워서 돗자리 깔고 한참 뒹굴거려도 좋을 날씨인데, 겨울 바다는 그렇게까진 못하겠더라. 일단 단체로 다녀왔으니까 더 그럴 시간도 없었지만, 왁자지껄한 활기가 좋았어. 그리고 이제 이런 최신 근황이나 순간 떠오르는 생각, 느낌은 따로 트위터(X인 거 아는데 입에 안 붙어) 계정을 만들어서 나누려고 해. 조금 콘텐츠를 채워놓고 알려줄게. 여행 사진은 참고로 인스타그램 @archiveonew에 업로드 중이니까 환기가 필요할 때 가끔 들여다보아요( ˊ ᵕ 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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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트 공원은 맨하튼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곳이야. 남쪽으로 조금 치우치긴 했는데, 나는 북쪽으론 아예 올라가지 않아서 제일 많이 거쳐 간 공원이었지. 그 근방에 가고 싶은 곳이 많았거든. 도서관, 서점, 만화책방 등・・・그 밖에도 곳곳에 자그마한 공원이 많아서 편하게 노닥거릴 수 있었어. 우리나라도 지금 열 배는 더 공원 생겨도 되지 않나 싶어. 너무 건물밖에 없어서 쉴 공간이 없단 말이지. 돈 안 내고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는 공공 공간 더 필요하다. 물론 뉴욕도 예전에는 건물만 가득했데. 그러다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라는 디자이너가 이러다간 큰일 난다고, 공원 안 만들면 이 크기만 한 정신병원 세우게 생겼다고 얘기하면서 공원의 공적/사회적 가치를 주장하며 센트럴 파크를 만들게 된 거야. 칼베르트 바우스라는 건축가와 함께. 그게 얼마나 미래적이고 유익한 주장이었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지. 덕분에 나도 그 말로만 듣던 명소에 방문할 수 있었고 말이야.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싶어. 어떻게 이 도심 한복판에, 노른자 땅이라고 부를 곳에 어마무시한 공원을 세울 수 있었을까? 진짜 거대했거든. 나는 사실 센트럴 파크를 말로만 들었지 사진이나 영상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여행 계획 세울 때나 찾아봤지. 공원 안에 미술관까진 그렇다 쳐도 동물원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여기도 정말 수시로 들락거렸거든? 근데 다 둘러보질 못했어. 지금 돌이켜보니 하루 날 잡고 공원만 탐험했어야 했나 싶다. 공원은 공원이라 부르기 애매할 정도로 광막했어. 크고 작은 호숫가, 여러 광장과 이름을 헤아리기도 어려운 각양각색 초목, 자유롭게 오가는 새들과 사람들이 어우렁더우렁 자리 잡고 있었지.
나는 시퍼렇다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파란 가을 하늘 아래서 책도 읽고 산책도 했어. 나무 밑이나 바위 위, 다리 난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선 읽고 쓰다가 문득 하늘을 바라보면 너무 좋은 거야. 파랑을 엄청 좋아하는데 거기선 눈만 올리면 쨍한 파랑이, 하늘이 환하게 펼쳐져 있으니까. 목적이 이끄는 삶에 대해 묵상하면서 주어진 하늘과 숲, 햇빛과 공기를 누리고 있자면 목적이 인도하는 생애는 아름다움과 자유로 가득하겠구나 생각하고 느끼게 돼. 울며 걷는 길일지라도 군데군데, 곳곳마다 생동하는 아름다움과 자유가 반짝이겠구나. 산책의 가치는 이런 데서 나오는 거야. 글이나 말로 접해서 건조한 텍스트로만 저장됐던 의미와 가치가 생생하게 다가오거든. 불현듯 맥락이 이해되는 깨달음도 오고. 걷는 게 좋다는 연구 결과도 예전에 나왔데(영어라서 남이 요약해 준 것만 봄ᵔ◡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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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떠오르는 인상적인 경험은 그루터기에 앉아서 책 읽던 거야. 별거 없지? 근데 그게 참 생생해. 날이 참 좋았어. 말한 대로 밝고 환한 하늘이었고, 나무가 잔뜩 우거진 숲 한복판에 앉아 너른 들판을 보고 있었어. 위로는 빛을 받아 투명하다 느낄 정도로 반짝이는 금빛으로 물든 잎사귀가 몸뚱이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있었고 살짝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바람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불고 있었어. 돗자리 사서 가져가기까지 했는데 매번 까먹고 그냥 나갔거든? 그런 게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땅에서 올라오는 따뜻하고 축축한 느낌도 정말 좋았어. 살짝 메마른 나무껍질이 느껴지는 단단한 뿌리에 앉아선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자연과 사람을 감상하는 시간. 공원 근처에 머무는 사람들은 정말 맨날 와도 안 질리겠다 싶더라. 부럽기도 했어. 나는 가을이라는 짧은 한 계절의 센트럴 파크만 보고 가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계절을 만끽할 수 있잖아. 나중에 또 된다면 봄이나 여름에 오고 싶어. 그땐 사둔 돗자리도 안 놓치고 써서 잔디밭에 냅다 누워있을 거야. 가을과는 또 다른 빛과 공기를 향유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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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 스퀘어랑 메디슨 스퀘어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센트럴로 지면 꽉꽉 채워버린 편지・・・하지만 센트럴 파크 정말 뻥 안 치고 열 번은 넘게 들락날락했으니까 어쩔 수 없어. 공원 그 자체로도 좋았고, 미술관이나 쉑쉑 버거 갈 때도 들르느라 그런 거긴 하지만 말이야. 그러고 보니 친구가 가면 꼭 쉑쉑 버거 1호점에서 먹방 찍어달라고 해서 생각도 않던 버거 먹으면서 아무말 대잔치한 영상이 떠올랐어. 자그마치 16분짜리였는데 유튜브에 올렸다간 조회수 1은 찍을까 싶은 영상이었지.
버거 말고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라고, 컵케이크로 유명한 베이커리 있는데 거기도 요청받아서 사 먹었거든? 제일 유명한 거 하나라 키라임인지 바나나 푸딩인지 두 개 먹었는데, 자리 없이 테이크아웃만 하는 뚝심 있는 빵집이라 건너편 공원 벤치에 앉아서 영상통화로 라이브 먹방 보여준 기억도 나네・・・주변에 비둘기가 많았는데 하필 내가 먹을 때 걔네가 어슬렁거리다가 푸드덕거리면서 날아가서 기겁하면서 먹은 것도, 벤치마저 자리 없어서 쓰레기통과 함께 케이크를 우적우적 씹어먹은 기억도・・・뉴욕 가면 한 번은 먹어봐. 나한테는 너무 달아서 이 사람들 당뇨병 안 오나 의문이 생기게 만드는 디저트지만 맛있긴 해. 혹평한 거 아니냐 싶은데 진짜 맛있어. 유명한 곳이니 한 번은 가보세요(진짜로).
이상한 소리로 끝내는 편지지만 나라고 맨날 진지하진 않으니까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날씨 보니까 오늘은 4도까지 올라가긴 하더라. 그래도 1월은 아직 겨울이야. 옷 잘 입고, 밥도 따뜻하게 챙겨 먹어. 언제나 그렇듯 마음도 겨울 한파에 얼어붙지 않게 잘 들여봐 주고. 다음 주엔 다른 공원 얘기를 들고 올게.
2022년의 가을이, 2024년 겨울을 조금이나마 데워주길 바라며. 샬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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