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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한 하루를 보냈니? 일주일은 어땠어? 나는 사실 고백하자면 별로 안녕하지 못했어. 지난 하루뿐 아니라 지난 일주일도, 지지난 주도 모두 다. 하나 더 고백하자면, 원래 두 번째 편지는 '정체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러니까 이 편지를 적고 있는 금요일 밤에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두서없이 적고 있는 중이야. 그러니 내 말이 횡설수설이라도 이해해 줘.
소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우울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중이야. 원인도 이유도 알아. 해결 방법도 알고. 다만 그 해결 방법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 매일이 지치고 괴로운 것뿐이야. 나는 원래 이런 얘기를 정말 잘하지 않아. 얼마나 안 하냐면, 정말 최악으로 힘들었을 때, 매 순간 정신병원에 가고 싶고 죽고 싶단 생각만 들고, 매주 술을 마시지 않음 도무지 못 견디겠던 순간에도 나는 내 할 일을 다 해내고 있었거든. 내 특기라면 특기가 하나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야. 내 감정을 차단할 수 있다고 해야 하나? 사람을 대할 때나 사람들과 있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아주 예민한 친구들이 아니라면 내가 어떤 상태고 마음인지 모를 정도로 멀쩡한 척을 잘해. 왜냐하면 내 감정은 감정이고, 사람을 대하는 건 아예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거든. 지극히 효율을 따지는 성격이라고 말했었니? 그런 점도 한몫해. 그들이 내 우울을 알아봤자 아무 쓸모가 없어. 해결이 안 되는데 왜 말해.
아무튼, 그래서 지난 열흘 하고도 나흘 동안에, 가장 안 좋았을 때는 주일 아침이었어. 지금 뛰어내릴까? 라는 생각이 누워있는데 확 들더라. 4층은 뛰어봤자 죽진 않을 거고, 그럼 한 15층까지 올라가야 하나, 복도 창문이 열리던가, 뭐 그런 충동이 불쑥 떠오르더라고. 내가 되게 인상 깊어서 적어둔 문구가 있어. "나는 삶을 끝내기 위해서 단 한 번도 심각한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은 종류의 시도는 안 해본 것이 없다. 생의 각 시기마다 그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 왔었다. (몬타우크, 막스 프리쉬)" 물론 이걸 읽을 때, 너는 내가 그런 줄 몰랐겠지. 말했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구는 게 내 특기라고. 그리고 우울은 감기라고 하잖아? 감기 걸렸다고 24시간, 일주일 내내 열이 나고 기침하고 그러는 게 아닌 것처럼 우울도 같아. 온종일 죽고 싶고 땅 파는 생각하지 않아. 혼자가 됐을 때 이제 억지로 꽉꽉 눌러놨던 게 열리는 거지. 너무 꽉 닫아서 썩은 내가 나는 생각과 느낌과 감정이.
오늘도 그랬어. 지금 내 마음은 너무 과하게 매끄러워. 성경에서 마음을 여러 밭에 비유하잖아. 나는 지금 콘크리트 밭이야. 차라리 자갈처럼 군데군데 틈새라도 있으면 무언가 들어가고 거기서 뿌리내린 것들이 피어오를 텐데, 아주 매끄럽고 깔끔하게 마감한 밭이라서, 뭔가 읽을 마음도 들을 마음도 잘 들지 않았어. 기도합주회에서 광야, 얘기하는데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더라고. 지금 내 마음처럼 아주 매끄럽고 새하얘서, 모든 신기루가 너무 또렷하게 보이는…그런 땅. 걸어가기엔 너무 눈부셔서 오히려 한 발짝 떼기가 안 되는 모순적인 공간. 이 땅에서 내가 견디려면 지구력과 자존감을 꼭 지켜야 한다고, 합주회가 시작되기 전에 들었거든? 근데 나는 그 두 가지가 제일 어려워. 왜 맨날 견뎌야 해요? 몇 년 전에 그런 질문의 기도를 했거든. 싫어요. 왜 늘 견디고 버텨야 해요? 이제 싫어요, 하고.
죽고 싶단 생각 진짜 많이 했다고 했잖아. 지금도 간간히 한다고. 이런 약한 소리 죽어도 안 하는데 왜 하나 싶지. 얘는 왜 두 번째 편지부터 뜨악스럽게 심각한 얘기를 하나 싶지. 왜냐면 이게 내 나름의 스티그마기 때문이야. 현재진행형 트라우마이지만 그렇기에 너에게, 혹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나도 겪어서 아주 잘 알거든.
너도 그런 친구일지 모르겠다. 멀쩡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다 하면서 살아가는. 아니면 무던하게, 몸이나 마음이 아프지만 안 느껴져서 아픈 줄도 모르고 쌓아가는 중일 수도 있고, 진짜 아프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도 있겠지. 나는 이 모습들 모두 괜찮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럴 수 있다고. 내가 위에 인용한 문장 기억해? 내가 먼저 모르면 모른다 어쩌고 써둔 거. 그런 거야. 나도 그랬고, 그러고 있다고. 내가 먼저 겪어봤고 알아온 감정이고 태도라서, 나는 어떻게 견뎌왔고 헤쳐 나왔는지 말해줄 테니까, 너무 두려워 말고 가보자고. 망가지고 부서진 모습, 주저앉다 못해 구덩이 파고 삽질하고 있는 모습도 다 보여줄 테니까, 혼자 앓지 않아도 된다고.
우울이든 무력감이든, 부정적인 감정이 해일처럼 덮쳐오는데 밖에 나가기 힘들다는 거 알아. 누구 보는 자체가 힘이 들고 숨이 막혀온다는 것도 알아. 그래도 나가봐, 한 번만. 사람 안 만나도 돼. 그냥 날이 좋으면, 햇빛이 거리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면 그걸 느껴봐. 상투적이어도, 뻔해도, 클리셰 같아도 아름답고 좋은 말을 읽고 들어봐. 그 말들, 언어가 부질없이 허무하게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티끌만 한 무게라도 마음에 얹히거든. 그게 결국 나를 살리더라. 죽고 싶어질 때, 괴로울 때,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늘 그랬어. 나는 그렇게 뻔하디 뻔한 말과 문장이 떠올라서, 그래도 살아가보자 결심하고 살아갈 수 있었어. 돌 틈을 뚫고 나오는 자그마한 제비꽃을 보고, 누군가 바지런하게 심어둔 수국을 보고, 이파리에 막혀 표면만 금빛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를 보고, 하얗고 둔둔한 털북숭이 개를 보고, 잼과 크림으로 가득 찬 쿠키를 먹고, 어느 날 저장해 놨던 어여쁘거나 뭉클한 사진을 보고…그렇게 일상을 안아봐.
재난 같던 일상이 사실 나를 포옹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사사롭고 소소한 순간들이 나를 사랑해서 나를 꼭 껴안아주고 있었다는 걸, 너를 누구보다 좋아해서 안아주려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거야. 정말로. 내가 오래전 읽은 시를 하나 전해줄게. 통통 튀는 어구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찍어두고 저장해 놨던 거야. 네 마음에도 그런 발랄함으로 전해지면 좋겠다.
시집 읽을 때 좋지
브람스를 들을 때도 좋아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해봐
잠들 때도 좋아하면 꿈을 꾸게 돼
같은 꿈을 일주일에 다섯 번 꾸는 것이 인생이야
물속에서도 꿈은 흘러가니?
바람은 어디에 사는 거니?
물속의 초콜릿 공장에 견학 가고 싶어
조금 더 자라면 수학을 공부하게 돼
이건 무슨 필요가 있지?
묻게 될 때가 오게 돼 있어
흐름 속에 몸을 맡기는 건 좋은 버릇이 아니야
눈두덩이 퍼렇게 부풀어오를 때까지
주먹질을 하게 될 날도 오지
오지 않았으면 하게 될 날이 와
그날을 꼭 안아봐
"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곽재구
'어린 물고기들과 커피 마시기' 중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야. 아들이야. 네가 있어서 기뻐."
살아가자. 사랑하자. 나도 그럴게. 그렇게 또 살아가볼게.
안녕, 다다음 주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