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하나 하자면, 뉴욕에 머무는 동안 예배는 한 번 드렸어. 지인과 같이 갈 생각도 안 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안 가게 되더라. 그냥 지금 여기를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누리고 싶단 마음만 가득했어. 그러다 숙소를 옮기고 동네를 산책(겸 탐사)하다가 한인교회를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내가 머무는 곳이랑 10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에 있더라고. 호기심이 더 컸던 것 같아. 라티노 타운이라고 했잖아, 진짜 아시아인이 안 보였거든. 그런 곳에서 마주친 교회, 한인 교회는 반가움과 신기함으로 보게 되더라.
나는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까 누군가를 맞이하고 환대하는 일이 더 많았지 내가 환대받는 일은 별로 없었어. '새로 온'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환대, 그 맞이해주는 감격을 잊고 살았는데…아주 오랜만에 그 기억과 감각을 떠올릴 수 있었어.
예배당으로 들어서기 전에 받은 소소한 질문. 처음 오셨어요? 어떻게 오셨나요? 순수하게 '나'를 향한 질문. 빙그레 웃는 미소와 환한 목소리, 스스럼없이 내밀어 잡아주던 손. 새삼스럽고 뻔하지만 따뜻하다 느꼈어. 그런 게 부족했나 봐. 필요했을 수도 있어. 사람에게 지쳐서 도망치듯 나온 여행이었지만, 또 그 제삼자의 위치에 머무는 것도 슬슬 피로해지던 시점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야. 내가 바싹 긴장하지 않아도 들리고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 놀라지도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입술로 몸으로 말해주는 공간 안에서, 아주 아주 오랜만에 편안하게 있었어. 가만히. 그리고 그 편안하고 새로운 곳에서, 익숙했지만 까먹고 있던 일련의 행동들을 해보는 건 환대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줬지. 기억나. 이젠 흐릿하지만 그래도 제법 선명하게. 헌금 봉투가 여럿 들어간 서랍장 겸 탁상에 깔린 두꺼운 유리 위에서, 초심자용 노란 카드에 글자를 적어 내려가던 일, 예배 순서가 적힌 주보를 어색하게 받아 기다란 나무 의자에 앉던 일, 환영 시간에 박수받은 일, 새로워서 한 자 한 자 또렷하게 귓가에 꽂히던 설교자의 메시지 같은 거. 검은 가죽으로 덮은 두껍고 낡은 성경, 높은 천장과 좁은 실내 사이를 둥둥 울리는 찬양 합창. 보통-전형적이라고 해야 할까?-교회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보며 혼자 속으로 얼마나 신기해했는지 몰라. 영어가 적혀있지 않았다면 한국의 여느 교회와 다르지 않았는데, 출석하는 교인들은 너무나 익숙해서 무디게 넘어갔을 곳인데 처음 발 디딘 나에겐 그 하나하나가 왜 그리 색달랐는지.
아마도 그건 그분들이 보여준 애정 어린 환대가 큰 몫을 차지했을 거야. 눈치껏 사방을 두리번거릴 때마다 어색해도 웃어주던 사람들이 그랬고, 예배가 끝난 후 스스로 소개하면서 내가 뻘쭘하게 혼자 있지 않도록 말을 걸어주고 이끌어주던 사모님이 그랬어. 밥 먹고 가라던 소리도 한몫했지. 코로나 이후엔 피자를 시키거나 샌드위치 정도 만들어 먹는데, 아주 오랜만에 밥을 하셨대. 내가 음식 호불호가 크게 없다고 해도 올드보이처럼 일주일 내내 샌드위치만 먹으면 입맛도 떨어지지 않았겠니. 진짜 진심으로 너무 좋다고, 감사하다고 하고 내려갔지. 한식 뷔페처럼 차려둔 식당도 새록새록 떠올라. 구내식당 분위기였는데, 이제 조금 더 작고 복작복작한 느낌이 컸어. 긴 테이블 위에 내가 한국에서도 제대로 못 보던 음식들이 잔뜩 쌓여있는 거야. 두부조림, 검은콩 자반, 불고기, 김, 심지어 떡이랑 귤까지 간식으로 있었어! 너무 행복한 거야. 너무 따뜻하고 맛있어서, 내가 원래 밥도 반 공기 정도 먹는데 한 그릇 싹싹 비웠잖아. 밥도 밥이고, 앞서 말한 대로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그 정겨운 환대와 따뜻함이 좋아서 마냥 기뻤던 것 같다. "이 커피 좋은 거예요, 사 왔는데 엄청 좋은 원두야." 뭐 이런 말 한마디에도 하하 웃게 되고 말이지. 난 매번 끊임없이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거든? 근데 이민 갔거나 오래 해외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지점이 그런 거잖아. 모국이 주는 편안함, 가족과 친구들 말야. 한낱 여행객에 불과한 나지만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어. 나는 늘 그런 환경, 그런 곳에 파묻혀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낯섦과 어정쩡함, 모호함과 어색함을 잊고 살았던 거야. 가끔 느낄 때가 있었지만 그건 아주 다른 나라에서 느끼는 감각과 다른 성질이지. 언제든 도망칠 수 있고 나가고 싶어 하는 열망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집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반발심이었을 수도 있겠어.
밥 얻어먹고, 반찬 없지 않냐며 내어주신 두부조림에 콩나물무침까지 받아 챙기고, 좋은 원두로 내린 원두커피에 크림까지 야무지게 타서 마시면서 절로 '환대'에 대해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 새로 온 사람을 맞이한다는 건 별것 아니면서 별거구나. 객관적으로 보면 아주 거창하고 화려한 대접을 받은 게 아니거든. 그냥 그분들은 그분들이 지니고 있던, 원래 갖고 있던 걸 내게 보여주고 주신 거야. 그치만 그래서 더 마음에 울림이 찾아왔지. 그 자연스러움, 소박하고 따끈따끈한 사랑이, 여기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구나, 마음도 몸도 쉴 수 있는 곳이구나 체감하게 해줬으니까. 갖고 있는 어색한 마음을 한시라도 빨리 녹여주는 게 필요하구나. 환영은, 환대는 억지로 무언가를 꾸미고 살을 붙여 전시하는 게 아니라 너를 '진짜로' 맞이하는 사랑을 표현하는 거구나.
환대의 적확한 뜻은 '반갑게 맞아 정성껏 후하게 대접함'이고, 환영은 '오는 사람을 기쁜 마음으로 반갑게 맞'이하는 거래. 거창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게 있는 걸 최선을 다해 내어주는 거지. 진심으로 기쁜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