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를 쓰다 말고 딴 길로 새는 이유는, 이때 나누고픈 현재가 있어서 그래. 지금 느끼는 마음과 감정, 생각을 말해주고 싶어서. 이별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말, 들어봤지. 내가 그래.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날 거고…영원한 만남이 없듯 영원한 이별도 없다는 걸 알지만 헤어질 때마다 싱숭생숭해. 뭐 하나 절대적이고 영원한 게 없는 걸 머리론 알아도 마음이 받아들이긴 힘들더라고.
난 사실 만날 땐 이별을 전제하거든? 표현하진 않지만 언젠가 오고 말 끝을 상상하는 편이지. 매번 그러는 건 아니고, 종종 떠올려. 햇수가 길수록, 끝도 곧 다가오겠구나 하는 거지. 미리 선을 쳐서 방어하고픈 마음일 수도 있고, 대비해야 덜 아프겠거니 하는 마음일지도 몰라. 둘 다가 맞겠지. 왜 울적하고 힘들어하나 생각해 보면, 내가 먼저 떠날 거라 전제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떠나고 싶어 하는, 사라지고 싶어 하는 건 매번 나였고 내가 먼저 작별 인사를 하겠단 생각을 자주 했으니까. 속세를 떠나 아주 사라지겠다는 건 아니지만 언제고 내가 속한 곳을 떠나겠거니 막연히 짐작하고 있었어서. 그 예상이 빗나갈 때마다 울게 돼.
처음 이런 이별, 내가 가기도 전에 먼저 떠나는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눌 땐 나도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대성통곡했던 거 같아. 그분이랑 그렇게 많은 얘기를 나누지도, 접점이 크게 있지도 않았는데 너무 당황했나 봐. 그냥, 한결같이 여기 뿌리 박고 계실 거라 여긴 분이 홀연히 인사를 해버려서…그땐 그분이랑 더 친하고 깊은 사이였던 사람들보다 내가 엄청 울었어.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는 성격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때 오는 당혹감이란. 지금 돌아보면, 상처받기 싫은 마음이 너무 커서 그런 성격이라고 스스로 속삭였던 것 같다. 거의 세뇌 급으로.
그 뒤에도 당연히 여러 번 있었어. 숱했을 거야. 기억나는 건 별로 없긴 해. 슬프고 서러운 마음과 별개로 기억력이 좋은 건 아니라서 말이지. 2019년은 기억나. 그 해가 유독 혹독한 시기였기도 하고, 여러 명이 가버렸기 때문에 다른 이별보다 생생하게 떠오르더라. 왜 정 붙인 모든 건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 걸까? 정들었기 때문에 마음에 흠이 너무 깊게 패서 시간마저도 뚝 잘렸다 여겨버리는 걸까? 객관적으로 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아무튼 이걸 쓰는 일요일 저녁에, 나는 또 한 번의 이별을 마주하고, 작별 인사도 마무리했어. 처음 들었을 땐 아무 생각 없었는데(이때 나는 음, 확실히 많이 겪으면 무뎌지는구나, 하고 있었어) 어제오늘 막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돌고 숨이 약간 가쁜 거야. 멀리 가시지도 않는데! 매주 얼굴을 볼 수 있는데도! 되게 그 슬픔이 가시질 않아. 우리가 너무 가까이 불어있어서 그랬던 걸까? 그니까 그 D가 처음 왔던 해부터 지금까지 같이 많은 걸 말하고 나누고 일했거든. 앞에 말한 19년에는 D가 제일 많이 만난 게 나라고 할 정도로 이것저것,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부터 크고 무거운 일까지 다 다뤘지. 그래서 이별은, 해도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구나……하다가 문득 또 이런 생각이 들었어.
이별만 그러겠어?
새 학기가 시작할 때도, 취업 준비하고 면접 볼 때도, 친구를 사귀고 사랑을 할 때도 똑같잖아. 해도 해도 익숙해지기는커녕 매번 떨리고, 이게 맞나 저게 맞나 고민하고, 자괴감 들다가 흐린 눈도 하다가 그래도 해야지 하고 이 깍 깨물고 해보고 그러지. 엇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과 비슷한 패턴이 계속 이어져도, 매번 낯설고 새롭잖아. 해도 해도 익숙하지 않은 건 언제나 세상이었어. 나와 마주한 모든 세상, 세계, 우주. 너.
익숙하지 않으니까 늘 꼼꼼히 봐야 해. 미숙한 건 당연한 거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다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해. 새로움을 접했을 때만 느끼는 그 경이와 환희, 불안과 초조함은 너도 알고 나도 잘 아는 것들이지. 알지만 도통 익숙해지려야 해질 수 없는, 길들일 수 없는 것들 말야.
그래서 세상과 오늘은 매 순간 새롭지 않을까. 익숙해지고 싶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시간과 사건이 성큼성큼 들이닥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무뎌질 수 없을 이별을 굳이 참지 않고 울어도 되는 거야. 서러워해도 되고 구질구질하게 굴어도 되고, 속 시원해할 수도 있고 욕해도 되는 거겠지. 어린애처럼 말이야. 우리 모두 익숙해질 수 없는, 완전해진 어른이 아니니까. 매일, 매번 그럴 테니까.
물론 이별만큼 사랑도 그렇게, 해도 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을 성질이니 매 순간 그 때와 나에게 맞는 선택지를 골라 하면 되겠지. 너랑 나는 모두 자유의지를 가진 사람들이잖아. 익숙하지 않아 두렵다고 움츠러드는 게 아니라,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품고, 자유롭게. 나대로, 나답게.
새 길을 알게 돼.
"여기 이런 게 있었어?"
모든 게 변하고
아름다운 것들도 모습을 드러내.
친구야. 너는 어떤 환경과 기로에 서있니. 나처럼 이별에 말문이 막혀 눈물만 한없이 흘리고 있었니.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광활에 압도 당해 엉거주춤 서있니. 최근에 한 영상을 봤는데 말이야, open AI에 입사한 디자이너 인터뷰였거든? 그 사람이 그랬어. 새로운 환경은 내가 더 많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그럼 새로운 사랑, 새로운 소망, 새로운 믿음은 뭘까. 더 많은 가능성과 경이, 감탄과 자유를 넘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공간 아닐까. 아마도 그럴 거야. 더 많고, 넓고, 깊은 가치를 확인하고 겪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계속 해보자. 사랑으로 소망으로 믿음으로, 담대하고 대담하게,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울면서도, 계속. 같이.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