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Place New (7)
D가 D에게 #15 Some Place New (7) |
|
|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함, 불편함, 불확실한 느낌이
결코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그 감정이 너의 성장점이 되어줄 거야.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
|
|
-
안녕, 한 주 잘 보냈어? 이 편지도 어느새 열다섯 통이나 보냈지 뭐야. 여행 사진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있는데, 거기도 게시물 개수가 50개를 넘겼더라고. 소박한 숫자지만 뭔가 꾸준히, 쉬지 않고 해내고 있다는 점이 좋았어. 뿌듯하고. 한 유튜버가 '매일 하는 건 아니더라도 생각하고 있다는 자체로도 꾸준하다는 게 아닐까요(정확하지 않아)?' 했는데, 그런 점에서 보면 그래도 나름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구나…해서 계속할 결심을 하게 돼. 묵묵히 할 일들이 있지. 쉴 때가 있겠지만 이 사람 말대로 머리 한 칸에 두고 있다면 그마저도 꾸준한 게 아닐까 싶어. 그러다 행동으로 옮기면 되는 거야. '무소의 뿔처럼 가라'는 책 있었는데, 그처럼 묵묵히, 우직하게 가는 태도와 마음이 중요하다고 느껴. 뭐든 그게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거라면 말이야. 말머리가 매번 길지? 좀 줄이는 연습도 해볼게. 오늘은 일단 구구절절 써서 한 통 띄웁니다. 너무 차가운 월요일은 아니길 바라며.
폭포에 들르기 전에 해낸 얼레벌레 에피소드: 투어 예약하고 안내 메시지가 오는데, 난독했어. 숙소를 알아서 예약하는 건데 나는 이걸 가서 고른 후에 현장 결제하는 걸로 이해한 거지. 한 마디로 숙소 예약도 없이 털레털레 생각 없이 갔단 거야. 알게 된 것도 다른 분이랑 얘기하다가 알았어. 바비큐 먹으면서 사소한 잡담을 나누다가 호텔 얘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다가 내가 예약 자체를 안 한 걸 안 거야. 황급히 앱을 켜서 보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 일단 두 자릿수가 아니었던 기억만 나. 쉽지 않다…생각하고 있는데 혼자 오신 분이 진짜, 진짜 짱! 감사하게도 같이 쓰자고 제안해 주셨어. 자기도 혼자 쓰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다행이라고 하시면서. 극적으로 40달러라는 적당한 가격으로 밤을 보낼 수 있었지…. 나처럼 대충 그렇군, 넘기지 말고 꼭! 꼼꼼히 읽도록 하렴. 특히 돈이 넉넉지 않을 땐 말이야.
마음이 아주 가뿐해진 채 보러 간 폭포는 굉장했어. 너무 벅차오르고 압도당했다, 는 건 아닌데 광활한 대자연의 순간을 끊임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건 경이롭긴 했지. 이런 게 벅차오르는 심정이었을까? 아니야. 그것보단 바다를 볼 때랑 비슷했어. 하루 종일 바라볼 수 있겠다는 마음. 거기에 동화되어 같이 녹아들 수 있겠다는, 조용하고 잔잔한 마음이자 느낌인 거지. 밤중에 본 폭포는 조명을 설치해서 온갖 색으로 현란하게 번쩍였어. 파랑, 초록, 노랑, 빨강, 무지개…안 한 게 더 자연스러웠겠지만 관광지니까. 그렇게 해야 그 거대한 정경을 밤중에도 또렷하게 볼 수 있으니까 했겠거니, 납득했어. 최근에야 공원 공사가 마무리돼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거라고 가이드도 해주셨는데, 그건 진짜 좋고 감사하더라. 굵게 굴곡진 골짜기에서 끝없이 쏟아지는 물을 안전하게 볼 수 있다니. 날은 춥고 물안개가 파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는데 왜 꼭 가보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 어떤 건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게 있잖아. 나한텐 이 폭포가 그랬어. 바다처럼.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그냥 물이 좋은 건가 싶어. 흐르고 쏟아지고, 고여있는 그 성질과 색을 좋아하나. 딴소리니까 넘어갈게.
|
|
|
공원을 돌며 폭포의 여러 곳을 둘러보고, 캐나다로 넘어갈 사람은 이쪽으로 오라며 가이드분이 안내해 준 곳은 작은 국경선이었어. 뭔 놀이공원 출입구처럼 빙글빙글 돌면 넘어가는 설치물이 있는데 신기하더라. 한국에선 국경 넘을 일이 없잖아. 여기는 물론 엄격하지만 신원 확인하면 넘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자체가 오묘하더라고. 물론 선 하나로 미국과 캐나다가 갈리는 것부터 따지면 아득해지니까 굳이 안 하긴 했는데…캐나다에서 보는 나이아가라가 더 장관이라길래 같은 방 쓰게 된 분이랑 둘이 야밤에 다녀왔지. 캐나다, 하면 재미없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관광지는 관광지야. 카지노며 놀이동산이 나이아가라에 지지 않을 정도의 조명을 쫙쫙 쏟아내며 으리으리하게 서 있었어. 여기가 이런데 라스베가스는 얼마나 어마어마할까, 엉뚱한 생각하면서 들어갔지. 폭포도 폭포인데, 그 가는 길목이 즐거웠어. 그 공유지라고 해야 하나, 어디의 소속도 아닌 길목을 걷는 게, 경쾌한 기분을 가져다주더라. 라라랜드의 주인공들처럼 이리 폴짝 저리 폴짝 뛰면서 춤춰보고 싶기도 하고.
폭포는, 그래. 한밤에 나온 보람이 있었어. 모든 게 캄캄하게 묻힌 골짜기 사이에서 붉고 파란 불빛을 내뿜으며 기세 좋게 내리꽂는 물살이란. 폭포에서 터져 나오는 물안개마저 약하고 흐리지 않았어. 힘차고 강력했지. 과장 보태자면 판타지 영화에서 용이 내뿜는 브레스 같았어. 소리, 그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강렬함을 더 강화해 주기도 했고. 사진 찍고 영상통화 하면서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한 기억이 떠올라. 이것 봐, 너무 신기해, 하면서 웃고 떠들고…시월 마지막 날이 그렇게 흘러갔어. 나이아가라 폭포와 마주한 채. |
|
|
새벽에도 결국 그 여운을 못 놔서 다녀왔잖아. 새벽보단 아침이긴 한데, 밝을 때 가면 어떨까?! 해서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갔는데 날이 흐린 거 있지. 흐리군요…하고 별다른 감흥 없이 돌아왔어. 어젯밤엔 그렇게 맑았잖아! 조금 투정 부리면서.
그래도, 그 희뿌연 하늘을 뚫고 변함없이 거칠게 흐르는 폭포는 감동이었지. 보는 것도 좋았는데 유람선 타고 폭포로 가는 시간이 있었거든? 그때가 사실 제일 좋았어. 안경은 안경도 아니고, 뭘 보는지도 모르는데 그 물 가까이 가서 직접 그 물살을 맞으면서 바라보는 시간은…뭐라고 할 수 있겠어? 그냥 좋았지 뭐. 그 속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좋았어. 물론 동영상 촬영도 잊지 않고 맑은 광기로 마무리했다. 영상도 올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링크만 되네. 사실 여행 브이로그 하려고 유튜브 계정도 만들었고, 네 갠가 올렸는데 계정도 비밀번호도 까먹어서 못 올리고 있어(편집도 귀찮아서 못 해 먹겠더라). 다시 해야지 그것도…하면 알려줄게. 지금은 사진으로 만족해 줘. 그때, 맞아. 할로윈이라 할로윈 한정 우비(유람선 타면 쫄딱 젖으니까 그거 끼라고 줘. 근데 사실 별로 효과는 없어) 줬는데 심각하게 고민했어. 기념품으로 가져갈까, 하고. 아닌 것 같아서 안 가져오긴 했는데 잘한 선택이었지. 지금 집에 있는 것도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싶은 미니멀리스트에겐 일말의 아련함만 줄 쓰레기 될 뻔했으니까(ㅎ).
폭포가 아름다웠다. 사실 이게 다야. 폭포가, 무자비한 기세를 보여줘서 너무 좋았다. 세상을 구석구석 여행할 이유가 있구나, 보지 않음 몰랐을 것들-느낌이든 감정이든-이 있구나. 그런 유익과 기쁨을 얻은 거지. 기회가 되면 화창한 날에 다시 가서 보려고. 맑은 날 보는 폭포는 또 다른 기쁨과 충만을 줄 테니까. |
|
|
그다음은 별거 없어. 점심 먹고 귀가한 게 끝이거든. 버팔로윙 먹고, 가이드분이 감사하게도 숙소 가까운 곳에 내려줘서 안전히 귀가했다 정도? 나 나름 정말 사고도 차별도 안 당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녔어. 감사한 일도 기쁜 일도 투성이였던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을 너에게 보다 상세히 말할 수 있어서 또 감사하고 기뻐. 이제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거야. 뉴욕에 머물고, 아는 목사님과 전도사님을 보러 샬럿과 워싱턴에 갔다가, 마지막 한 주를 보내러 뉴욕으로 귀가할 거야. 물론 굉장히 축약한 내용이라는 거, 알지? 남은 기록도 네가 가볍고 즐겁게 읽기를 바라며. 우리, 다음 주에 또 만나. 건강하고. 샬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