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날이 많이 차가워. 완연한 겨울인가 봐. 완연한 가을, 봄 따위 문장은 쓸 수 있는데 완연한 겨울은 왜 안 쓸까 생각해봤거든? 겨울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추위도 어둠도 완연한 계절은 슬프기도 하고, 몸과 마음을 너무 곱게 만들어 버리잖아. 그래도 겨울이 있어야 완연한 봄을 양팔 벌려 활짝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너무 웅크리지 말자. 추위는 추위대로, 어두움은 어두움대로 저마다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면서.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설레는 마음으로 세보아도 좋을 거야.
아무튼 여행 일기를 쓰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 이번 주에 이태원 참사 시민 분향소 지킴이를 하고 왔거든. 하게 된 계기도 이유도 별거 없어. 계기는 별거 있긴 하지…작년에 일어난 일이잖아. 난 그때 샌프란에 있었거든. 타지에서 접한 소식은 너무 낯설었어. 기억도 잘 안 나. 묵었던 호텔 직원이 나한테 물어봤는데, 뭐라 말하기 어려워서 "그러게, 너무 충격적인 비극이야…믿기지 않아."라고 얼버무리듯 말했던 것 같아.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았거든. 그리고 잊었어. 찾아보지도 않았어. 일부러 더. 변명이지만 난 그 사고를 직면하고 싶지 않았어. 그 숱한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상상하며 추측하게 되니까 너무 버거운 거야. 사실 세월호 때도 그랬어. 일하고 있었는데 소식을 접하고, 찾아보다가, 덮었어. 죄책감이 컸던 것 같아. 15년(그때도 1주기에 뭔갈 남겼네)에 쓴 기록을 보니까 이렇더라; 우울하고 슬프고 죄책감이 들고. 분향소로 향하는 줄을 봤을 뿐인데도 나란 사람은 뭔가, 하는 자책감이 들게 만드는. 이 마음은 그대로였던 거야. 보면 내가 할 수 있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이 여전해서 그 많은걸, 찾아보지 않은 거지.
그렇게 덮어놓고 쌓아놓고 치워버린 채 잊고 있었다가, 월요일에 지킴이 모집 글을 읽었어. 창만 켜둔 채 한참 그대로 내버려 뒀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 후원이나 서명은 했지만 직접적으로 나간 적은 없어서. 처음 하는 일에 대한 낯섦, 분향소가 주는 무거움 따위가 머릿속을 잔뜩 휘저었어. 그래도 갈까 말까, 저 평일에 시간을 빼서 가는 게 맞나, 그래도 12월이니까, 그다음 날 월차 내면 괜찮지 않을까, 온갖 계산을 하며 냅다 제출했는데 저녁에 연락이 온 거야. 난 12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1월이고 바로 다음 날 하겠다고 쓴 거더라. 난독인지 눈이 침침한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다 대고 "전 12월인 줄 알았는데요, 취소하면 안 될까요?" 하면 안 되잖아. 그 날짜를 바랐다는 양 네, 내일 건강하게 뵐게요, 답했지. 월차 쓰겠단 계산적인 마음과 이왕 할 거 두 시간은 하겠단 각오로 저녁 여덟 시부터 열 시까지 신청한 건데 어정쩡한 평일에 가려니 살짝 심란하더라. 물론 금방 털어냈어. 난 벌어진 일에 대해선 그래서 뭐 어쩔 건데…하는 게 있거든. 번복은 가오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날이 좀 추웠어. 시간은 한 시간 넘게 비었고. 오랜만에 온 곳이니 걷자, 하고 걷기 시작했지. 바람이 찬 만큼 공기가 맑아서 걷긴 좋았어. 사람들의 여유로운 웃음, 걸음걸이, 자잘하게 떠드는 소리도 좋았지. 알아? 그 시청에서 조금 걸어가면 을지로 2가가 나오는데, 거기 신세계 백화점 본점 있고 거대한 분수 있는 거? 연말이라 그런지 엄청 화려하게 꾸며놨더라.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분수대와 크리스마스의 환상을 구현한 것 같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움직이는 벽면이, 저절로 핸드폰을 꺼내게 만들더라고. 또 걸어가면 이번엔 롯데 백화점이 있어. 유러피안 크리스마스 거리를 재현한 어쩌고 해서, 그 일대를 크리스마스 영화나 동화에서나 볼 법한 상점가로 꾸며놨거든. 트리도 으리으리한 걸 갖다 놓고 전구로 은하수를 수놓았더라. 그 구역에 있는 가족이, 친구가, 연인이 모두 웃고 있었어. 너무 즐겁고 기쁘게. 해사한 웃음을 짓고 활기차게 재잘거리면서. 거기를 넘어서 시청 광장으로 향하는 길은 조금씩 조용해졌고, 어두워졌지. 추위가 몰아닥친 11월 광장에 밤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떠나는 곳이지 돌아오는 곳이 아니니까. 싱숭생숭함을 가득 안고 갔던 것 같다. 어설프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춥다며 깔고 앉고 있으라고 펼쳐준 침낭을 방석 삼아 의자에 앉았어.
"메시지 쓸 분들에게는 여기서 쓰라고 하면 돼요. 서명은 여기에, 보라색 리본 고리는 편하게 가져가라고 하면 돼요. 이건 유가족분들과 운영을 위한 후원 계좌니까 이걸로 하라고 하시면 되고…"
사람들이 한 세 명인가, 네 명 온 것 같아. 후원하고 싶다며 지갑을 꺼내던 분, 친구들한테도 나눠주고 싶다며 서너 개를 집어 가던 분, 조심스레 다가와 리본만 들고 총총 사라진 분…나도 개 중 하나였는데, 반대의 입장이 되니 정말 묘한 기분이었어. 지나가는 사람은 제법 있었는데 다들 흘끔거리고 다가오진 않았어. 뭔가 책임져야 한다는 느낌이었을까,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까? 생각도 슬픔도 하염없이 많아져서, 더 꿋꿋이 허리를 펴고 앉아있었어. 나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바로 옆에는 그 친구들, 내 또래들이 사진으로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유가족이 있는데 내가 우는 건 사치라고 느꼈어. 기분은 계속 이상한 채였고. 옆 천막에서 유가족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일상적이면서도 내가 평소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단어들이 튀어나오는 거야. '생존자'라는 단어. '참사'. 글로나 접해본 단어 있잖아. 사람 입에서 나오면 정말 이상해. 너무 낯설어.
그 와중에 어떤 분이 계속 분향소 근처를 서성였어. 서성인 정도가 아니라 말도 걸고 계속 그러셨거든. 보라색의 영어 스펠링이 뭔지 알아요? 하면서. 옛날엔 그런 사람을 보면 이상하고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는데 신기하게 이젠…안타까웠어. 슬프고. 슬픔이 전반적으로 드리운 공간에 있어서 그런 거였을까? 아니겠지. 첫 편지 기억나? "그 찰나에 누군가는 누군가의 손 내밂 따위 하나 못 받아서, 말 한마디 못 받아서 고꾸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라고 했잖아.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이란 책을 읽고 말야. 그러다 보니까 이 사람도 그렇겠구나 싶더라.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홀로 여기를, 그래도 말을 걸면 반응하는 누군가들에게 왔구나. 외로워서. 손 내미는 누군가를 기대하면서. (아닐 수도 있지. 그렇지만) 그래서 착실하게 대답해 드리긴 했어. 물론 그분은 나의 로봇 같은 대답(나는 혼잣말도 질문의 뉘앙스가 느껴지면 대답하려는 이상한 의무감이 있어, 질문엔 답해야 한다는 신조와 타인을 썩 궁금해하지 않는 천성이 뒤섞인)이 시원찮았는지 옆으로 가셨지만.
한 시간을 얼음장이 되어선 앉아있다가, 담당자님이 물어보시더라고. 분향소 와봤냐고. 한 번도 안 와봤다고 했더니 영상도 보고 사진도 봐보라면서 교대해 주셨어. 그때서야 거길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는데, 백쉰아홉 명의 영정 사진이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었어. 가운데에는 향과 초가, 누군가의 사진 밑에는 꽃다발이 놓여 있었지. 난롯가에는 유가족 몇 분이 앉아계셨는데 근처로 갈 엄두가 안 났어. 그분들이 앉아있는 나한테 춥지 않냐고,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그냥 사람 좋게 다가갈 용기가 안 나더라. 그래서 말없이 사진들을 살펴봤어. 너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들이었어. 저마다 탄생일이 다른데, 사망일이 똑같은 게 괴로웠어. 먹먹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가만히 훑어보다가 영상을 봤거든.
그 말 알아? 부모 잃은 자식은 부르는 호칭이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는 부르는 호칭이 없다는 말. 신빙성도 진위도 따질 수 없지만 그 문장이 문득 떠올랐어. 영상에서는 별이 된 친구들에게 가족이 건네는 메시지가 차례차례 떴는데, '슬프다'란 형용사론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었어. 다음 생엔 다시 만나자는 말,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믿을 수 없다는 말, 내가 감히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여실히 담은 말들이 사진과 같이 쭉 이어지는데…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과연 깔끔하고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감사했던, 다행이라 여긴 점은 내가 거기 서 있을 수 있다는 거였어. 거기 있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아주 오래도록 영상을, 사람을 두고두고 바라볼 수 있다는 점. 눈물이 자꾸 나서 끝까진 못 보고 돌아서서 기도했어. 이미 별이 된 친구들이 행복하고 기쁘길 바라며, 아직 세상에 있는 가족의 마음과 몸이 안녕할 수 있도록 위로해 주시고 치유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뭔가 이상한 잡음? 소음이 들렸거든. 사람이 소리치는 거였어. 잘 들리진 않았는데, 혐오의 외침이었어. 분노인지 증오인지, 뭔지 모를 감정을 섞어 날카롭게 지른 소음이었고…그때 정말 엄청 울었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울었던 것 같아. 그니까……누군간 이게 아니꼬울 수 있겠지만 그걸 당사자들, 유가족 앞에서 대놓고 소리칠 건 아니잖아. 가족 잃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그 흔적 남은 방 하나 못 치우고 있는 분들에게 이런 걸 왜 하냐고 하는 게 말이 돼? 당장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도 나는 너무 슬펐는데, 아직도 걔 사진을 제대로 못 보는데, 자식이, 동생이, 아내가 남편이, 친구가 죽었는데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 안 되잖아.
내가 이 지킴이 하겠다고 처음 생각한 이유는 이런 거였어. 곁에서 함께 위로할 순 있지 않나? 예수님도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셨잖아. 세상을 사랑하니까 위가 아니라 아래에 계셨잖아. 이게 정치적 의도고 어쩌고를 떠나서, 그냥 단순하게 슬퍼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단 이유. 마음. 그래서 너무 괴로웠고, 안타까웠고, 미안했고, 슬펐어. 도저히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한참 홀로 울었던 것 같다. 그 말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심장을 찌르다 못해 꿰뚫은 말에 무슨 마음과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해서. 그 와중에도 혼자 숨죽여 우는 내가 미안해서…
이건 내 애도고 추모야. 잊지 않겠단 마음이고 결심이고 각오야. 모두의, 특별히 유가족의 마음과 몸이 평안하고 안녕하길 바라며. 진심으로 샬롬이 가득한 시간이길 바라며. 안녕. 다음 주에는 조금 더 가볍고 유쾌하게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