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 Place New (6)
D가 D에게 #13 Some Place New (6) |
|
|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불안함, 불편함, 불확실한 느낌이
결코 나쁜 게 아니야.
오히려 그 감정이 너의 성장점이 되어줄 거야.
『언어가 삶이 될 때』, 김미소
|
|
|
-
안녕, 날이 갑자기 춥네. 지난 한주가 어땠을지 모르겠어. 나는 '집요함과 독기'에 대한 키워드가 생기고 실행하는 나날이었어. 쉬운 선택을 한다고 들었다고 했잖아. 그때 나는 나름의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렇게 집요하게 나를 던져서 한 건 얼마 없었다는 걸 알거든. 어쩌면 지금이 그런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다듬는 시간이지 않을까 싶어. 그건 또 여행기가 끝나면 말해줄게. 자잘하게 하고 싶은 말들, 굵직한 시간의 흔적을 헤아려 보는 말들은 늘 쌓여있으니까, 이 편지도 아주 오래 갈 거야. (나는) 좋아. 너도 좋아해 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쓰는 거니까!
미국에 있으면서, 생각해 보니 여러 곳을 나름 알차게 다녀왔더라. 아는 분들 만나러 떠나는 거 외엔 사실 굳이 명소를 둘러볼 마음이 없었는데, 다른 D가 나이아가라 폭포는 꼭 가보라고, 어릴 적 다녀왔는데도 그게 그렇게 생생히 떠오른다고 추천해 줘서 일정에 넣었지. 맨하탄, 브라이언트 공원 근처 스타벅스에서 투어를 신청한 사람들이 모여 1박 2일로 양조장과 작은 주립공원, 폭포를 보고 돌아오는 프로그램이었어. 제법 쌀쌀한 날씨라 음료를 사 마시지도 않았는데 카페 안쪽에 박혀서 언제 오나, 바깥을 바라보던 게 떠올라. 그리고 거기서 이미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사이좋게 마시고 먹던 가족도. 왜 기억하냐면, 그 가족도 같이 투어를 신청한 일행이었거든. 연락받고 나가는데 동시에 나와서 알았어. 이상하게 사람들이 떠올라. 유학 중인 딸과 여행하기 위해 멀리서 날아온 엄마, 예능 작가인데 드라마 작가를 하려고 일을 그만두고 서부부터 동부까지 여행 중이라던 내 또래 여자, 아들 둘 데리고 온 4인 가족. 얼굴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 그런 구성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 여행 때 만나서 그런 걸까? 나랑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라오고 살아온 사람들이라 그런 걸까. 하루라도 스물네 시간 동안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있잖아. 알아 온 사람들과도 제법 달라서 혼자 되게 드라마 보듯 잘 봤어.
안 갔다고 속상해하진 않았겠지만, 다녀와서 정말 좋았어. 들렀던 모든 곳이 다. 날이 화창했어. 맑고 깨끗한 하늘을 벗 삼아 첫 번째로 도착한 장소는 주립공원이었어. 어린애들도 걸을 수 있을 만큼 험하지 않고 산책하듯 갈 수 있는데(물론 내 기준), 폭포가 여럿 있어서 걷다가 중간중간 멈춘 것 같아. 사진 찍느라. 난 늘 내가 본 모든 걸 정확히 묘사하고 싶거든? 그래야 알 수 있잖아. 근데 때때로 그 실재 앞에서 무슨 말을 덧붙이고 설명하나...싶어. 웅장하게 지어진 다리와 가뭄 때문에 마른 계곡, 이제 막 겨울을 준비하는 듯 얼마 물들지 않은 나뭇잎을 매단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가을 하늘이란. 그 정교한 듯 거친 듯 세월을 엮어 쌓은 절벽 틈새로 부드럽게 흐르는 물결이란. 투어가 아니었다면 아주 천천히, 그 시간을 헤아려 보며 파묻히고 싶어서, 거기 아주 오래도록 머물렀을 거야.
|
|
|
흘러가는 물살과 바람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새삼 느꼈지. 어디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뛸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을 때 세계를 봐야겠다. 그런 말 들어보지 않았어? 가슴이 떨릴 때 하라고. 다리가 떨릴 땐 하기 힘들다고. 그런 거야. 나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풍경, 빛과 공기와 사람과 건물이, 아침과 어둠이 어찌나 좋던지.
이 감동을 간직한 채 두 번째로 간 곳은 와이너리였어. 아, 감탄밖에 안 나오더라. 공원이 천혜를 보여줬다면, 와이너리는 사람의 끈기와 집념도 같이 보여준 곳이었어. 바로 정면에 거대한 포도밭이 양옆에 펼쳐져 있어. 지평선을 가득 채운 것처럼. 정말 채웠을지도 모르지, 그만큼 널찍했어. 옥수수밭 괴담 마냥 포도밭에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말이야. 새파란 빛 아래 늘어진 초록과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이 동화 같았어. 빨간 머리 앤이 살 법한 곳처럼 느꼈거든. 정말 이 저편엔 그런 작고 아담한 집들이 모여서, 포도를 기르며 한 해를 살아갈 것처럼 보여서 마냥 건너를 상상하게 되더라고. 도대체 이 끝없는 포도밭 너머엔 뭐가 있을까? 하면서. 여기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곳이었지. 바다도 한 시간은 멍때리면서 가만히 바라볼 수 있거든? 파도가 치는 것만 봐도 마음이 잔잔해져서, 그 가지런한 리듬이 좋아서 가능한데 포도밭도 되겠더라. 바람 따라 우수수 흔들리는 누런 포도 숲이 좋았어. 그 바로 앞 들판을 해맑게 뛰어다니는 애들을 보는 것도, 와인 시음하면서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다른 사람들의 웃음 소리 듣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건 늘 그런 군중 속 고독 같아. 그 활기와 생기를 바라보면서 들으면서, 잔잔히 녹아드는 시간 말이야. 난 그게 좋아. |
|
|
폭포 얘기는 다음 주에 해줄게. 폭포 들르기도 전에, 내가 얼마나 헐레벌떡...얼레벌레 왔는지와 야밤과 아침을 조금 더 상세히 말해주고 싶거든. 사실 이 편지를 주로 토요일 새벽에 쓰는데, 토요일 아침에 쿠키 구우러 나갔다 오고 일요일 아침에도 구우러 나가야 해서 정신이 조금 몽롱해. 오래 안 잤거든...그러니까 조금 더 맑고 건강한 정신과 의식으로 말해줄게, 알았지? 추우니까 감기 안 걸리게 옷 잘 껴입고, 따뜻한 거 잘 먹고 마시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겨 먹는 시간을 보내길 바라. 추운데 아프면 더 서럽잖아. 때때로 마음이 시리다면, 조금 더 따끈하고 달콤한 차와 함께 쉼표를 찍어줘도 좋겠고. 뭐든, 네가 쉼표를 찍을 수 있는 시공간에 머물길 바라며. 오늘도, 이다음 다가올 숱한 요일도 평안하길 바라. 샬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