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로 보내는 쪽이지 가는 쪽이 아니었다. 언제나 떠나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나보다 빨리, 먼저 떠났다. 처음 사람을 떠나보낼 때가 떠오른다. 스물한 살, 별로 친하지도 않던 목사님이 갑자기 사임하셨다. 송별 자리에서 나 혼자 너무 많이 울었다. 그렇게까지 울 마음도 없었고 사람들이 다 쳐다봐서 쪽팔려 죽겠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하도 울어서 그 목사님이 나를 달래주기까지 했다. 당시 써둔 일기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이렇게 적은 기억은 난다: 먼저 떠날 줄 몰랐다고. 떠나도 내가 먼저 떠날 거라고, 당신은 여기 나무처럼 굳세게 뿌리 내린 채 떠나보낼 거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짐작했다고. 그러니까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사람은 당신이지 내가 아니었다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이별과 작별을 겪었다. 어떤 사람은 꽤 오래 머물렀고 어떤 사람은 급히 가버렸으며 어떤 사람은 조용히 사라졌다. 서러울 정도로 운 게 머쓱할 정도로 가는 게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나한테나 모교회였고 그들에게는 일터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면 가고 오면 오는 것, 정도가 감상의 전부가 됐다. 어느 날의 나도 떠나고 싶어서, 가버리고 싶어서, 아주 사라지고 싶어서 불완전한 시도를 몇 번 했기 때문에, 영원한 건 절대 없고 순간의 교차점이 맞물렸을 뿐이라고 여기게 됐다.
이젠 내가 떠난다. 떠나게 되니 조금은 또 마음을 알 것 같다. 가야 할 때가 오면 가야 한다. 그 ‘때’라는 건 언제나 그렇듯 갑작스럽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성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설명할 것도 아니다. 굳이 언어로 정제해 봤자 ‘직감적’으로, 라는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라고 하실 때 넙죽 받아들이고 길을 떠난 것처럼, 그냥 ‘알게’ 된 거다. 가야 한다고. 이제는.
트위터에서 본 말이 있다; 정신병자 중에 제일 덜 정신병자인 나, 정상인 중에서 제일 덜 정상인인 나, 이런 뉘앙스의 말이었는데 나는 그게 날 설명하기 좋은 문장이라 여겼다. 회장까지 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거의 9년 동안 현관 복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물론 이건 어디에 있어도 동일한 마음이라서 원래부터 반쯤 뜬 채 애매하게 사는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언제든 나갈 수 있는 문을 뒤에 둔 채, 복도를 지나쳐 거실과 안방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사도 하고 얘기도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지만,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는. 그 마음은 작년부터 부쩍 커졌고, 정말 갈 때구나, 이제 문을 열고 다른 세상, 다른 바깥으로 나가야 할 때구나 내심 알고 있었다. 거기서도 홀로 애매하다 여기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물론 공동체를 사랑했다. 너무 사랑해서 끔찍하기도 했고 징그럽기도 했으며 분노도 하고 슬퍼하기도 했다. 좋지만 좋지 않고, 싫지 않지만 싫은 기분, 뭐라 정의 내릴 수 없고 내릴 마음도 없는 사람과 공간이었다, 여기는. 회장 할 때 (전) 회장 언니가 말해준 말이 있었다. 그래도 회장 할 때만큼은 공동체를 가장 최선으로 위했냐고 하면 부끄럽지 않게 네, 라고 예수님 앞에서 고백할 수 있다고 했다. 너도 그렇지 않니, 라고 했을 때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어정쩡한 긍정으로 고백했지만 돌아보면 그냥 그 뭣 모르던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최고는 못 줬지만 최선을, 그래도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최선을 줬다.
공동체도 내게 많은 걸 줬다; 개별의 사람 하나하나가 특별하다는 것, ‘정상’과 ‘평균’은 사람에게 함부로 갖다 쓸 말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를 예뻐하고 귀히 여길 수 있게 하는 마음, 애통해하고 간절해질 수 있는 마음과 감정, 공동체 정신, 시도와 실패와 경험은 쓸모없지 않으며 그때는 눈물로 겨우 해냈던 게 미래에는 당연한 것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 따위.
그러니까 이젠 괜찮다. 우리는 서로 많은 걸 나눠주고 받았다. 앞으로 가는 곳에선 또 어떤 걸 주고받을지 모르겠지만 받았던 만큼 또 나눠줄 수 있을 것이다. 나눠준 만큼 또 받을 거고.
내 최선이었던 와이케이디, 언제나 안녕하고 건강한 공동체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