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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기도회를 하기 전 몇 가지 작은, 중요하지만 눈에 크게 띄지 않을 일을 처리했다. 금년도 대표 기도자와 봉헌 위원을 정하는 일이었다.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표 기도자는 할 사람이 정해져 있고, 봉헌 위원은 당해 꾸려진 셀을 배치하면 됐으니까. 문제는 그 시스템에서 벌어졌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예배 코디네이터(현 예배 분과장)인 파도와 행정 시스템 변경을 두고 몇 번 얘기를 나눴다. 아마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쓰고 있었을 텐데, 이걸 조금 더 활용하자…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바꾸고 보완하는 일은 제법 효율적으로 보였고, 나는 우리, 그러니까 실무자이자 관계자인 회장과 코디네이터만 공유하고 사용하면 될 일로 알았다. 전체를 뜯어고치는 것도 아니고, 굳이 비유하자면 만들어진 블록 성에 블록 하나 더 붙이잔 느낌이었으니까.
그 일로 쌀이, 나를 따로 불렀다. 특별 새벽 기도회가 끝난 후였다. 그는 화가 난 채였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이게 뭐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지듯 묻는 쌀을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묻어두고 벌컥 화내는 사람에게 약하다 못해 겁에 질린다. 파도와 나눈 얘기, 그로부터 반영된 결과에 대해 어설프게 이야기하자 그는 그걸 왜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결정하냐 말했다. 물론 또 어리둥절해야 했다. 쌀은 예배팀 담당 전도사지만 실무를 보는 건 아니라 여겼다. 어떤 의미로 실무자지만(같이 연습하고 콘티 짜고 인도했으니까) 행정과 운영은 그가 아니라 파도, 코디네이터의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뭐든 사과해야 했다. 미안하다고, 잘 몰랐다고. 그 일이 그만큼 중대한 변화인 거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속은 울렁거리고 기분은 꿀렁거렸다. 누가 다가오지 않았다면 쌀과 나는 그 자리에서 혼내는 선생과 처벌받는 제자처럼 더 오래 견뎌야 했을 터였다.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다. 파도였다. 그는 벌써 나와 쌀 사이 있던 일을 안 모양인지, 이런저런 위로와 분노를 표하고 끊었다. 익숙하다는 듯 덤덤한 말투였다. 그사이 벌써 한 번 운 나와 딴판이었다. 어쩔 도리도 없이 서러워 숨죽여 울었는데.
회장이 되고 나서 처음 울었던 날이지만 마지막은 아니었다. 아직도 종종 우스갯소리로 말하고, 서문에서도 말했지만 이때만큼 많이 운 시절이 없었다. 지금은 어지간한 일엔 눈물도 잘 나지 않으니 강해졌다고 봐야 할까? 말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지.
이제는 그런 나날들, 강렬한 감정과 느낌 사이에서 해일처럼 밀어닥친 시간이 어슴푸레하다 못해 희다. 무적霧滴 같은 시간을 긁어모아 이랬을 거고 저랬을 거고, 내가 나를 추측해야 할 정도로. 나쁘지 않다. 되려 감사하다. 시간이 앞으로 전진하는 게 아니라 회오리 모양으로 계속 빙글빙글 돌았다면 언제나 같은 감정과 느낌과 가치관과 생각에 짓눌려 걸을 여력도 결심도 하지 못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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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프게 봉합한-파도와 쌀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몰라도, 80% 정도는 말한 대로 바뀌었다-시스템과 감정은 뒤로 밀어놨다. 당시엔 그 모든 걸 털어놓고 밝히면 안 된다 여겼다. 도망치지 말라던 초록의 말과 더불어 회장 아닌 임원단 시절 겪은 회장은 항상 강했다. 날카롭고 두꺼운 죽창 같았다. 뾰족하지만 정확했다. 초록도 비슷했다. 죽창이나 칼처럼 차갑고 뾰족한 건 아니지만, 해야 할 일들과 일들을 처리하는 방식은 비슷했다. 둥그런 듯 정확한. 그런 사람이, 그런 회장이 되고 싶었다. 맡은 일을 척척척, 앞에서든 뒤에서든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고 잘하는 사람.
그런 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혼자 할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았지만, 나를 나답게 만들고 회장으로 뽑았던 건 꼭 그런 말끔한 행정 처리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땐 몰랐다. 그냥 두 사람이 해내던 거니까, 내가 본 회장들은 모두 그랬으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고만,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많은 일들이 닥쳤을 때 어찌할 줄 몰랐다. 쌀과 겪은 일은 아주 작은, 벌어질 많은 일들의 시발점이었다. 내부에서 외부에서, 때론 나 스스로 도대체 어쩔 거냐고 물어봤다. 그때마다 울진 않았지만 대신 마음을 조금씩 깎아 나갔다. 아니다, 살을 덧붙였다고 말해야겠다. 굳은살이 박여야 아프지 않은 것처럼 그 해는, 그 일은 보통 굳지 않고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너는 그렇게 굳어있으면 안 된다고, 하염없이 굳은 채 돌처럼 무감하고 무정하게 너를 포함한 모두를 그렇게 봐선 안 된다고 말해주고 행동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 시기를 어찌저찌, 생채기와 상처와 흉터와 눈물 자국으로 가득해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그들 덕분이었다.
나를 나답도록, 적어도 벼랑에서 떨어지진 않게 붙잡아 준 사람들. |